눈을 감으니 ‘포르테뇨의 탱고’가 보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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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고가 태어난 ‘밀롱가’ 찾아 도전해보니…

○ 탱고의 시작은…
항구도시 ‘라보카’ 부두 유럽노동자들… 밤만 되면 정장 입고 춤추며 이성 유혹

○ 탱고의 매너는…
춤추기 전 미리 눈빛으로 의사 주고 받아… 한 명의 파트너와 연이어 서너곡 춰야

○ 탱고 진짜 맛은…
대형극장이나 오래된 카페서 선보이지만… 길거리 무명댄서의 공연, 옛 모습 가까워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길거리 탱고(위쪽 사진). 무명 댄서인 이들의 춤사위가 주는 감동은 어느 큰 무대보다도 크다. 밀롱가의 역사로 불리는 ‘콘피테리아 라 이데알’에서 춤추는 사람들. 부에노스아이레스=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길거리 탱고(위쪽 사진). 무명 댄서인 이들의 춤사위가 주는 감동은 어느 큰 무대보다도 크다. 밀롱가의 역사로 불리는 ‘콘피테리아 라 이데알’에서 춤추는 사람들. 부에노스아이레스=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19세기 말 아르헨티나에서 탄생한 남미 문화의 상징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퇴역장교 역의 알 파치노가 ‘포르 우나 카베사’에 맞춰 멋진 탱고를 선보인 후 그 인기는 더욱 증폭됐다. 우리나라에선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주인공 연재(김선아 분)가 탱고를 추며 위안을 얻는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남녀 간 호흡이 중요해 ‘하나의 심장과 네 개의 다리’로 표현되는 탱고의 고장,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았다.

남성이 눈빛을 보냈다. 카베세오였다. 춤추기 전 미리 눈빛으로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는데, 이를 카베세오라 한다. 여성이 승낙하면 그제야 남성은 춤을 청한다. 기본 탱고 스텝 정도만 배운 기자가 미처 눈길을 피하지 못하자 이를 승낙으로 여긴 남성이 다가왔다. 자신을 호르헤라고 소개한 이 탱게로(tangero·탱고를 추는 남자)의 손길에 이끌려 플로어로 나갔다.

“발을 보지 마세요. 탱게라(tangera·탱고를 추는 여자)는 도도해야 해요. 고개를 들고 눈을 살짝 내리고 탱게로의 리드에 몸을 맡기세요. 어려우면 그냥 눈을 감아요.”

탱고는 한 명의 파트너와 연이어 서너 곡을 춘다. 한 곡 내내 탱게로의 발만 보며 춤을 추자 호르헤는 이를 지적하며 탱고의 자세와 음악 즐기는 법 등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 곡이 시작됐다. 눈을 감으니 스텝은 엉켰지만 탱게로의 미묘한 움직임을 따라가기는 한층 수월했다.

탱고와 같은 커플 댄스는 철저히 ‘가부장적’이다.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가 따른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배우기 쉽다. 호르헤가 앞으로 나오면 뒤로 물러서고, 옆으로 보내면 그대로 따랐더니 두 번째, 세 번째 곡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부에노(좋다)!” 호르헤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가벼운 베소(볼에 하는 키스)를 건넸다. 몇몇 카베세오를 거절하고 몇몇은 받아들이며 탱고를 즐기다 보니 오전 2시가 넘어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보통 밀롱가(사람들이 모여 탱고를 추는 곳)가 밤 12시에 시작해 오전 4시까지 이어진다.

기자가 찾은 날인 11월 25일 유서 깊은 밀롱가인 ‘콘피테리아 라 이데알’에서는 200여 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 탱고를 배운 관광객 등 초보자가 상당수였다. 호르헤는 “정말 춤 잘 추는 ‘고수’들은 오전 2시 이후에 방문한다”고 귀띔했다.

탱고는 19세기 후반 고향을 등진 가난한 유럽 이민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남쪽에 있는 항구도시 ‘라보카’의 부두 노동자들이 밤만 되면 땀에 전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채 반도네온(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에 맞춰 춤을 추며 이성을 유혹했던 게 탱고의 시작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빈민가를 벗어나 고급 극장 무대에 올랐고, 세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관광객을 유혹하는 탱고 상품이 넘쳐난다. 대극장에서 저녁을 먹으며 즐기는 ‘탱고 쇼’가 대표적이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노래, 춤이 어우러져 대형 뮤지컬 같은 화려함을 뽐내지만 미화 100달러(약 12만 원) 정도로 비싼 편. 차라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최고(最古) 카페인 토르토니 등 오래된 카페에서 선보이는 소규모 탱고 쇼가 정감 있고 비용도 약 150페소(약 4만 원)로 저렴하다. 하지만 부둣가인 라보카의 허름한 카페나 길거리에서 기타와 반도네온 연주에 맞춰 춤추는 무명 댄서들의 공연이 가장 옛 모습에 가깝다. 공연이 좋았다면 댄서들에게 약간의 ‘팁’만 주면 된다.

포르테뇨(항구 사람들이라는 뜻,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을 이르는 말)처럼 직접 탱고를 춰보고 싶다면 밀롱가를 찾으면 된다. 여기서 수시로 열리는 탱고 강습도 해볼 만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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