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 씨 “내용없는 기교는 무의미… 요즘 슈만-라벨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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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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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깊이고 의미다

크레디아 제공
크레디아 제공
지난달 25일 오후 6시에 만난 피아니스트 백건우(65·사진)는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전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자택으로 옮겨 연습했고, 이날도 하루 종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신홀에서 피아노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멕시코,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투어를 마치자마자 귀국한 터였다. 그는 2,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다. 2일에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3일엔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한다.

이날 인터뷰는 음악평론가 박제성 유혁준, 팝페라 테너 임형주에게서 받은 질문을 중심으로 꾸려보았다.

―슈만과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은 음악적으로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합니다.(박제성)

“라벨은 화려한 색채와 리듬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슈만은 템포와 흐름을 잘 타야 하는 낭만적인 작품입니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학생 때는 그의 부인인 클라라가 편집한 악보를 많이 썼는데, 슈만을 알면 알수록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라벨은 그와 인연이 깊은 작곡가다. 1975년 라벨 전곡으로 데뷔 음반을 꾸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를 동경했는데 그 당시 잘 모르면서도 라벨이 프랑스의 색채를 가장 잘 그리는 작곡가라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악보는 아버지에게서 처음 받은 악보 중 하나입니다. 작품이 굉장히 현대적이었지만 금세 사랑하게 됐어요. 어떤 작품은 몇 차례 연주하면 더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영원한 젊음’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기교는 뛰어나지만 개성이 없이 획일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음악을 추구하십니까.(유혁준)

“기교를 앞세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내용이 없는 기교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먼저 음악을 이해해야 거기에 맞는 테크닉을 찾아 쓸 수 있습니다.”

그는 한 작곡가를 꾸준히, 깊게 파고드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스크랴빈, 리스트, 무소륵스키 피아노 전곡,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전곡,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다. 자리를 함께한 아내 윤정희가 “결혼 첫해, 집 안에 온통 리스트 악보가 펼쳐져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랜 세월 동안 연주활동과 가정을 동시에 잘 꾸려온 비결은 무엇인가요. 정말 배우고 싶습니다.(임형주)

“내가 ‘러키’한 것이죠. (아내를 쳐다보며) 옆에서 잘 받쳐주니까….”

윤정희가 거들었다. “바이올린 하는 우리 딸과 나는 언제나 ‘우리 아빠, 우리 남편 음악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해요. 밖에선 과묵하기로 유명한 이이도 집에서만은 더없는 수다쟁이죠.”

백건우는 12월의 첫날, ‘브람스: 간주곡, 카프리치오&로망스’ 음반(도이체그라모폰)도 내놓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i: 2, 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만∼27만 원. 1577-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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