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재현한 실물모형, 실재와 허구 틈새 파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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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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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트리니티갤러리 토마스 데만트 전

토마스 데만트의 ‘Tribute’.
토마스 데만트의 ‘Tribute’.
환하게 일렁이는 촛불, 부드럽게 물결치는 커튼, 천장이 무너진 발전소의 제어실 등. 사진 속 장면이 전부 종이로 제작된 모형이란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내년 1월 10일까지 열리는 독일 작가 토마스 데만트 씨(47)의 국내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나 개인의 기억을 담은 사진을 실물 크기의 종이 모형으로 정교하게 재현해 촬영한 뒤 모형은 파기한다. 현실보다 더 실재 같은 작품은, 사진이 진실을 기록한다는 믿음을 뒤집고 현실은 조작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02-515-9496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는 작품을 제작할 비용도, 저장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종이로 작품을 만들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과정을 거친 끝에 오늘의 작업이 탄생했다. 1년에 네다섯 개 모형을 만들어 촬영하는데 실재와 허구의 틈새를 파고든 그의 작업은 뉴욕 모마,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등에 소개되면서 명성을 얻고 있다.

붉은 양초를 모형으로 찍은 작품의 경우 지구촌의 대형 사건사고에 익숙해지면서 사건의 본질은 잊히고 추모의 행위만 남은 현실을 일깨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제어실과 옛 동독의 정치범 감옥 등 보도사진, 어린 시절 작가의 방과 지금은 없어진 오스트리아 산골의 낡은 파이프오르간 등 일상 풍경이 어우러진 전시는 갈 수 없는 곳, 사라진 것을 생생한 현실로 불러내 추모와 추억의 감성을 자극한다.

“내 작품은 사진보다 회화에 가깝다. 굳이 사진 속 이야기를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스토리보다 관객의 느낌과 상상력이 중요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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