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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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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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날을 어떻게 대처하나

도서출판 꽃삽 제공
도서출판 꽃삽 제공
여기 죽음에 대처하는 여러 모습이 있다. 어떤 게 정답인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죽음도 곧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스위스 출신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2004)는 그의 저서 ‘인생수업’에서 이렇게 썼다.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은 그 순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죽음을 선고받으면 죽음이 실체가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삶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100일 여정 책으로 남긴 CEO

2005 년 5월. 미국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KPMG그룹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유진 오켈리는 갑작스러운 뇌종양 선고를 받는다. 쉰셋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개월. 오켈리는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삶을 치밀하게 설계하고, 그 계획대로 하나하나 실천해 간다. 그리고 100여 일간의 마지막 여정을 글로 기록한다. 물론 죽기 직전의 며칠은 아내인 코린 오켈리가 대신 썼다. 이듬해 발간된 이 책은 한국에서도 ‘인생이 내게 준 선물’(꽃삽·2006년)이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오켈리는 서문에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인 메리앤과 지나에게, 그리고 이 세상의 동반자이자 다음 세상의 안내자가 되어준 코린에게’라고 썼다. 최고의 선물이었던 가족에게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선물을 안긴 셈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생을 마감하는 자신에게도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그리고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닌가.

그렇지만 오켈리는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이들이 그렇게 많진 않다. 그래서 ‘존엄치료’와 같은 완화치료가 말기 환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죽음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가

24 일 개봉하는 ‘50/50’은 20대 중반에 척추암에 걸린 캐나다 출신 영국 방송작가 윌 라이저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화를 제안한 사람은 라이저의 실제 친구이자 배우인 세스 로건. 그는 영화 주인공 애덤의 친구 ‘카일’ 역으로 직접 출연까지 했다. 갑작스럽게 죽음과 맞선 애덤과 그를 돌보는 카일의 투병기는 의외로 매우 유쾌하다. 카일은 암 선고를 받은 애덤을 위로하기 위해 파티를 연다. 두 친구는 희귀암이란 ‘소재’와 애덤의 민머리를 이용해 클럽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은 애덤에게 여전히 벅찬 현실이다. 함께 항암치료를 받던 ‘미치’가 세상을 떠나자 애덤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며 괴로워한다.

“처음엔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죠.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하지만 그렇지 않죠. 사람들은 왜 사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할까요? ‘넌 죽어가고 있어’라고.”

영 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라이저는 한때 죽음과 정면으로 맞섰던, 그리고 언제 다시 그런 상황에 빠질지 모르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애덤을 통해 털어놓은 셈이다. ‘영화의 형식을 가진 편지’로 말이다. 라이저는 병을 극복하고 현재도 작가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1000명의 죽음 지켜본 의사

일본 도쿄의 세타가야 구에서 호스피스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오츠 슈이치는 “죽음이 불행이라면 우리는 모두 불행한 인생으로 끝나게 된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죽음이 곧 불행은 아니라는 얘기고, 이는 곧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 된다.

그의 베스트셀러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후속판 격인 ‘삶의 마지막에 마주치는 10가지 질문’(21세기북스·2011년)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다양한 태도가 묘사돼 있다. 수년간 투병하던 40대 여성이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순간 중학생인 장남은 “살 수 있다고 그래놓고. 엄만 우릴 속였어, 속인 거라고!”라며 울부짖는다. 어른들의 위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장남은 “형, 이제 그만하자”라는 동생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소란을 멈춘다. 그리고 사망선고가 내려진 뒤에야 “여보, 정말 잘 견뎠어. 고마워”라며 오열하는 남편. 저자가 목격한 이 한 장면에서 우리는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50대 남성은 언제나 “약한 소리 말라”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 아내 때문에 더 큰 괴로움을 호소한다. “선생님, 제 아내가 걱정이에요. 제가 죽는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렇지만 격려를 받는 일이 이렇게 괴로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환자가 비록 병을 극복하지는 못해도 자신이 지나온 여정을 만족스럽게 돌아볼 수는 있다. 즉,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진심 어린 충고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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