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구세군 자선냄비 11월과 1월에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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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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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붉고 속 검은 짝퉁 냄비 조심

기업의 사회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일반 자선냄비와 모양이 다소 다른 기업형 자선냄비도 만들어졌다. 2007년 열린 기업형 자선냄비 전달식에서 꼬마 홍보대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휘슬러코리아 제공
기업의 사회 참여가 활성화되면서 일반 자선냄비와 모양이 다소 다른 기업형 자선냄비도 만들어졌다. 2007년 열린 기업형 자선냄비 전달식에서 꼬마 홍보대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휘슬러코리아 제공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연말연시 풍경이 있다. 거리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구세군의 종소리와 불우이웃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씨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와중에도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초등학생, 수년 동안 거액을 기부한 ‘이름 없는 천사’, ‘돈이 없어 죄송하다’는 편지와 함께 금반지를 기부한 청년 등 아름다운 이야기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다른 한 가지. 바로 자선냄비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2’가 언제나 구세군 곁을 지켜 온 그 빨간 냄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수프 냄비를 끓게 합시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보면 항상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진짜 요리할 때 쓰는 냄비일까.’ 정답은 ‘처음에만 그랬다’이다.

자선냄비는 1891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배 한 척이 난파돼 난민들이 생겼다. 구세군의 여성 사관(구세군은 군대와 비슷한 조직으로 구성된 기독교 교회) 조지프 맥피가 이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 수프를 끓이던 냄비를 선창가에 걸었다. 그러고선 외쳤다. “냄비를 끓게 합시다.”

맥피의 호소에 사람들은 한푼 두푼 정성을 보탰다. 결국 난민 모두에게 수프를 주고도 남을 만큼 성금이 모였다. 이 일을 계기로 구세군은 매년 12월 냄비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냄비는 주방에서 쓰는 것이 아닌, 뚜껑에 돈 넣는 구멍이 있는 모금 전용 냄비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선 1928년 12월 15일 스웨덴 출신 선교사인 요세프 바(한국명 박준섭) 구세군 사령관이 처음 자선냄비를 걸었다. 이후 6·25전쟁 시기를 제외하곤 한 해도 빠짐없이 자선냄비가 시민들과 만났다.

2004년 새로 제작돼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은 다음 달 1일부터 시작된다.
2004년 새로 제작돼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은 다음 달 1일부터 시작된다.
매끈하고 잘 빠진 몸체, 날렵하게 뻗은 커다란 손잡이, 상판에 뚫린 정교한 구멍…. 자선냄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자태에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1928년 사용된 자선냄비의 모습을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자선냄비는 위는 넓고 밑은 좁은 가마솥을 개조해 만들었다. 그러다 1964년 납작한 원기둥 모양의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2004년에는 독일 주방용품 업체인 휘슬러코리아가 구세군에 자선냄비를 기증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모습뿐만 아니라 재질도 많이 변했다. 무쇠에서 양철로, 그리고 전기아연도금강판(EGI·부식되지 않고 내구성이 강한 소재)으로 진화했다. 휘슬러코리아의 김소현 과장은 “자선냄비 교체 프로젝트에 쏟은 시간만 반년이 넘는다”면서 “각도 지름 깊이 무게 디자인 등을 모두 고려해 냄비를 제작했다”고 전했다.

쌀 57가마니가 3만2308가마니로

1980년, 전국 37곳에서 구세군 사관 및 성도들이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벌였다. 기부된 금액은 5900만 원에 달했다. 자선냄비 모금 첫해인 1928년 모금된 848원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수치. 쌀 한가마니(80kg) 가격으로 비교하면 1928년 15원, 1980년엔 5만 원 정도였으니 1928년에는 57가마니, 1980년엔 1180가마니가 모인 셈이다.

지금은 어떨까. 규모와 액수가 30년 전과 비교해 비약적으로 늘었다. 2010년 모금 지역은 76곳, 모금액은 42억 원(쌀 3만2308가마니, 쌀 한가마니 13만 원 기준)에 이르렀다. 자원봉사자만도 4만 명이 넘었다. 올해도 전국 76곳에서 315개의 자선냄비가 따뜻한 손길을 기다릴 예정이다.

1980년 전국에서 모금액이 가장 많은 곳은 당시 가장 번화가였던 명동이었다. 하지만 2010년 영광의 1위 자리는 잠실 롯데월드가 차지했다. 그 뒤를 서울 을지로에 있는 롯데백화점이 이었고, 명동은 3위로 밀렸다. 이곳들은 모두 유동인구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서울에서 가장 모금이 적었던 3곳은 어디일까. 왕십리와 가산디지털단지, 여의도가 불명예를 안았다.

짝퉁 구분, 냄비 모양부터 살피세요

초창기 자선냄비에는 뚜껑이 없었다. 있다 해도 손목이 다 들어갈 만큼 구멍이 컸다. 그러다보니 기부하는 척 자선냄비에 손을 넣었다 돈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서글픈 세태를 뒤로하고, 결국 1977년부터 자선냄비 위에 철망이 등장했다. 2004년 이후 새롭게 제작된 자선냄비에는 견고한 상판 위에 조그마한 구멍만 있을 뿐이어서 아예 ‘냄비털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짝퉁’ 자선냄비다. 구세군의 홍봉식 사관은 “구세군 자선냄비를 모방해 시민들을 유혹하는 가짜 냄비가 꽤 많다”면서 “그렇게 모금된 돈은 사용처가 불확실해 소외된 이웃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 주머니만 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와 짝퉁 자선냄비를 구분하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냄비 모양이다. ‘기업형 자선냄비’, ‘미니 자선냄비’ 등 특수 용도로 제작된 것을 제외하고 거리에 있는 대부분의 자선냄비는 아랫면 지름 35cm, 윗면 지름 30.7cm, 높이 24cm로 윗면보다 바닥이 조금 넓은 원통형이다. 양 옆에는 위쪽을 향해 뻗은 손잡이가 달려있고, 상판엔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다. ‘구세군’이라 적힌 방패 아래 자선냄비를 매달고 있는 삼각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진품을 구분하는 한 방법.

11월이나 1월에 딸랑딸랑 종을 울리는 사람 옆의 자선냄비도 짝퉁일 가능성이 크다. 구세군은 12월 1일 자선냄비 시종식 이후 크리스마스 전인 24일까지만 모금 활동을 진행한다. 물론 간혹 예외도 있다. 수재민이 생기는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시기와 관계없이 자선냄비가 등장할 수도 있다.  
■ 구세군 냄비 개봉 어떻게
당일 저녁 자루에 모아 은행 1박후 집계


기업형 자선냄비
기업형 자선냄비
구세군 자선냄비 개봉과 모금액 사용엔 철저한 원칙이 있다.

서울 지역의 경우 모금 장소마다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이 자선냄비를 매일 저녁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구세군 빌딩으로 가져간다. 냄비는 담당 사관과 2명 이상의 개수 위원(구세군 직원 또는 지역사회에서 임명된 인물),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봉한다. 냄비 안의 돈은 바로 수거자루에 넣어 열쇠를 채운 후 그날 밤 은행으로 보낸다. 다음 날 구세군 사관 및 직원 등 5∼10명이 은행 직원의 입회하에 각각의 자선냄비에 모인 모금액 내용을 기록한다.

모금액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수재민, 실직자, 심장병 환자, 다문화 가정 등을 돕는 데 쓰인다. 구세군은 모금 전 행정안전부에 모금 계획서를 내고, 모금 뒤엔 결과 보고서와 사용계획 승인 요청서 등을 제출한다.

모금액 집행은 구세군 내 사회복지부가 담당한다. 모금액을 집행한 뒤엔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고, 그 감사 보고를 참고해 행안부에 결산 보고를 한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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