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빵~ 웃음이 터지는 방… “인테리어는 행복과 기쁨을 창조하는 예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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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앤드더시티 무대 꾸민 조너선 애들러 도쿄 인터뷰

인기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했던 조너선 애들러는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요즘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다. 애들러가 제작한 인테리어 소품. 조너선 애들러 제공
인기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했던 조너선 애들러는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요즘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다. 애들러가 제작한 인테리어 소품. 조너선 애들러 제공

껍질이 반쯤 벗겨진 바나나 꽃병,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 도자기, 입을 벌린 고래 모양의 받침대…. 미국에서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꼽히는 조너선 애들러(45·사진)가 만든 도자기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인터넷이나 고급 백화점 인테리어 소품 매장에서 그의 도자기 제품을 한 번쯤 봤을 정도로 재기 넘치고 유머가 담겨 있다.

그는 전체 외관은 세련되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즐거운 외침을 담자며 2000년대 ‘해피 시크(Happy Chic)’라는 새로운 디자인 흐름을 연 디자인 구루(Guru·힌두교, 불교, 시크교 및 기타 종교에서 일컫는 스승)이기도 하다. 1960년대가 연상되는 복고주의와 시대를 가늠할 수 없는 초현실주의 사이를 묘하게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미국 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하며 미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동아일보 위크엔드3.0은 2일 일본 도쿄 라코스테 홀리데이 에디션 발표회장에서 애들러를 만났다. 매년 연말이 되면 라코스테는 전 세계 유명 작가와 협업해 한정판 피케 셔츠를 내놓는데 올해 주인공이 바로 애들러다. 그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위크엔드3.0이 처음이다.

○ 해피 시크!

애들러를 생각하면 핑크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정작 인테리어 작업을 할 때 핑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밝은 오렌지와 머스터드, 초콜릿 갈색을 주로 쓴다. 기하학적인 패턴과 원색의 향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풍요로움이 느껴지게 한다. 핑크빛 꿈을 꾸듯이 말이다.

▼내년 컬러는 오렌지… 왜냐면 우울을 걷어차야 하니까▼

“요즘 미국 뉴욕에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큰 사회적 문제예요. 디자이너에게도 그런 사회적 상황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요소예요. 긍정적인 영감을 가질 수 있는 디자인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죠. 단조로운 디자인이지만 그 속에 즐거움을 담자는 ‘해피 시크’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해요.”

사실 그도 20대의 절반을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한 백수로 보냈다. 브라운대에서 예술사를 공부한 그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무작정 뉴욕으로 갔다. 영화산업에 관심이 있던 터라 한 영화기획사 우편정리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몇 달 가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제가 상사였어도 제때 출근하지도 않고 맡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나 같은 직원을 계속 고용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 후로도 5, 6개의 직업을 가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해고 통지서만 받았죠.(웃음)”

애들러는 20대 중반 더 늦기 전에 어린 시절 꿈꿨던 도예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춘기 시절 한 도예캠프에서 처음 물레를 돌렸던 기억은 머릿속에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캠프에서 돌아온 후에도 종종 집 지하실에서 부모님을 졸라서 얻은 물레를 돌리곤 했다.

하지만 도예캠프에 참가한 ‘경력’만으로 도예가가 되겠다는 건 너무 무모했다. 대학 시절 근처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에서 수업 몇 번 들은 것 외에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가 물레를 다시 잡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샤넬의 퀼팅 핸드백이었다.

“그 당시 뉴욕에 있던 여성들이 샤넬 가방을 선망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저 가방을 도자기로 만들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직접 가죽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저 가방을 도자기로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착각했죠.”

조너선 애들러가 제작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공간 연출은 좌우가 딱 맞아떨어질 만큼 균형감을 중시한다. 기하학적인 무늬의 카펫 등으로 리듬감을 살려준다. 조너선 애들러 제공
조너선 애들러가 제작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공간 연출은 좌우가 딱 맞아떨어질 만큼 균형감을 중시한다. 기하학적인 무늬의 카펫 등으로 리듬감을 살려준다. 조너선 애들러 제공
○ 내년 포인트는 ‘희망·기쁨’

생계를 위해 시작한 도예가의 삶은 쉽지 않았다. 뉴저지에 살던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도 여러 번, 1994년 우연처럼 뉴욕의 고급 백화점 바니스뉴욕에 자신의 도자기를 보냈다. 그의 위트 넘치는 도자기는 (애들러의 표현에 따르면) ‘기적처럼’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1998년 뉴욕 소호 거리에 그토록 꿈에 그리던 자신의 단독 매장을 낼 수 있었다.

유명해진 애들러는 공예뿐 아니라 패브릭, 벽지, 공간 인테리어 등으로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갔다. 자신의 이름을 딴 디자인 회사도 세웠다. 미국 현지에서 인테리어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 ‘톱 디자인’ 심사위원으로도 출연하며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 인사’가 됐다.

내년에는 어떤 색이 유행할지 색의 마술사인 그에게 물었다. ‘오렌지’를 세 번이나 연달아 외친 애들러는 “전 세계 경기가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오렌지처럼 밝은 색이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패션에서 영감을 얻어 도예가로 출발한 그이지만 정작 옷차림은 톡톡 튀는 인테리어 스타일과 대조적으로 굉장히 정숙하다. 항상 하얀색 치노 팬츠에 갈색 구두를 신고 버튼다운 셔츠에 브이넥 스웨터를 입는다. 뉴요커 스타일에서 덜함도 더함도 없다. 셔츠만 입을 때는 꼭 셔츠 밑단을 바지 안에 넣고 벨트를 맨다. 그는 “샤넬 백에서 영감을 얻어 도예가로 전업했듯이 지금도 매 시즌 유명 패션브랜드의 디자인 동향을 점검한다”며 “다만 옷차림만큼은 절제되고 단순한 의상을 즐겨 입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위크엔드3.0 독자들을 위한 인테리어 팁을 부탁했다.

“가구 위치를 바꾸고 대청소를 해보세요. 가구를 바꿀 형편이 안 된다면 그보다 가격이 싼 침대 시트, 소파 커버 등 패브릭만이라도 바꿔 보는 거죠. 가구와 패브릭은 시각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작은 변화만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답니다. 자신이 사는 공간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삶에 큰 활력소가 된답니다.”

도쿄=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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