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영자 前이화여대 교수 “56년 작곡인생 마지막 무대… 음악魂 불태워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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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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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금호아트홀서 발표회

4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작곡가 이영자 씨. 그는 “내 눈이 보이는 한 작곡을 하겠다. 가난했지만 대학에 진학했고 유학까지 갔다. 내 삶이 곧 ‘하면 된다’였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4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작곡가 이영자 씨. 그는 “내 눈이 보이는 한 작곡을 하겠다. 가난했지만 대학에 진학했고 유학까지 갔다. 내 삶이 곧 ‘하면 된다’였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안방 면적의 3분의 2쯤은 그랜드 피아노 두 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책장에는 슈베르트 등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부터 프랑스 현대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까지 악보로 빽빽했다. 탁자와 피아노, 책상마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깎은 4B연필이 연필꽂이에 가득했다. 벽에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1948년 직접 필사한 악보가 걸려 있었다.

정갈하면서도 무언가 ‘진행 중’이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이곳은 한국 여성 작곡가의 ‘대모’ 이영자 씨(80·전 이화여대 교수·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의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이다. 올해 팔순을 맞은 그는 지금도 이 방에서 빈 악보를 음표로 사각사각 채워 나간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마지막 작품 발표회를 앞두고 있다. 1956년 첫 작곡 발표회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작곡 인생 56년을 맞는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다는 뜻에서 ‘내 혼(魂)에 불을 놓아’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서 따왔다.

“진작 뒷방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나이가 됐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이번을 마지막으로 내 이름 단 연주회는 안 합니다. 하나씩 정리해야지요. 하지만 작품은 꾸준히 쓸 거예요.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라도 누군가 재조명해주기를 바라면서요….”

이번 연주회에서는 박경리의 시 ‘그리움’ ‘기억’ ‘내 모습’에 곡을 붙인 ‘박경리 시에 의한 세 편의 노래’를 초연한다. 2006년 미국 뉴욕에 머물 때 한국서점에서 구한 ‘박경리 시집’에서 영감을 얻었다. 1958년 7월 명동 시공관에서 연 두 번째 작곡발표회에 올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955’도 레퍼토리에 넣었다.

“스승인 나운영 선생님이 ‘한국에도 현대음악의 물결이 밀려올 것이다. 외국에 가서 공부해라. 기악곡을 본격적으로 써라’고 말씀하셔서 작곡한 곡이지요. 서툴고 부끄럽지만 23세, 대학교 4학년 이영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번호 1번이라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습니다.”

연주회의 마지막 곡 ‘엘가의 사랑의 인사 주제에 의한 하프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적 변주곡’은 하피스트인 막내딸 한준영 씨와 피아니스트인 큰딸 한난이 씨가 연주한다.

이 씨는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작곡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1967년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했다. 국내에서 현대음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작곡가로서는 늘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여성 작곡가가 관심받기 시작한 것이 1930년대부터였으니 국내 음악계의 푸대접을 크게 탓할 수 없었다.

“작곡 발표회를 열면 관객이 꾸벅꾸벅 졸다 가거나 ‘아유, 이게 무슨 음악이야’, ‘어려워서 못 듣겠어’ ‘재미가 없다’ 이래요.(웃음) 작곡해서 밥 안 나와요. 강원도(원주시) 촌년이 그저 자기가 좋아서 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마지막 무대에서 초기작과 최근작을 들려주고 관객에게 점수를 물어보고 싶어요.”

그는 화선지를 부엌칼로 잘라 대학 도서관에 있는 악보를 베껴 그렸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열정만큼은 그때와 똑같다.

“작곡가로 지내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살아갈수록 삶의 아픔이 음악으로 승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육신은 사그라지고, 인생은 단것보다 쓴 게 많죠. 비록 무대에서 연주되지 못할지라도 내 눈이 보일 때까지 음악에 마지막 영혼을 불태우고 싶습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i: 20일 오후 3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 2만 원. 02-2266-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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