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레스토랑]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박창우 조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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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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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살린다’는 자세로 음식에 혼과 氣 불어넣어요

12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레스토랑 브래서리에서 박창우 조리장이 그가 만든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암에 걸린 아내를 생각하며 매번 ‘생명을 살린다’는 각오로 음식을 만든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2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레스토랑 브래서리에서 박창우 조리장이 그가 만든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암에 걸린 아내를 생각하며 매번 ‘생명을 살린다’는 각오로 음식을 만든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생명을 살린다는 자세로 만드는 작품.

그는 음식을 이렇게 만든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2009년 아내가 유방암에 걸린 이후로 그는 절대 음식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물론 그전에도 대충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 심정은 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내는 그가 만든 카프레제를 좋아한다. 토마토에 모차렐라 버펄로 치즈를 올리고 접시에 담아 정성스레 만든 드레싱을 치면 그게 그렇게 맛있단다. 암에 걸려 고기를 먹지 못 하는 아내를 위해 고기 같은 쫄깃한 질감을 주는 치즈에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 양식 겨자, 소금, 후추를 넣어 만든 드레싱을 친 그의 특별요리다. 물론 설거지도 그의 몫이다.

“암에 걸린 아내에게 해주는 음식은 그냥 하는 음식과는 다르다. 생명을 살린다는 자세로 만든다.”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난 이 호텔 뷔페 레스토랑 ‘브래서리’의 박창우 조리장(43) 이야기다.

그에게 의사는 다 같은 의사가 아니다. 의사도 명의(名醫)가 있듯 요리사도 다 같은 요리사가 아니다. 의사가 약으로 병을 고치는 것처럼 요리사는 음식으로 건강을 챙긴다. 명의가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를 돌보듯 그는 온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

그냥 시작한 요리
그렇다고 타고난 요리 천재는 아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 그에게도 요리는 남의 일이었다. 라면 정도는 혼자 끓여 먹었다. 밥은 안 해도.

요리와의 인연도 무미건조하다. 1988년 직업학교 격이던 경주호텔학교 양식 조리과에 입학했다. 큰 뜻? 그런 것 없었다. 어머니가 추천했다. 당시 이 학교는 유명도가 좀 있었다. 정식으로 학력 인정은 안 됐지만 요리사 양성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 취직도 잘됐다. 올림픽이 열리면서 호텔업계가 호황을 맞아 졸업하면 100% 호텔행이 보장됐다. 솔직히 말해 그냥 취업하자고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취업이 됐다. 그해 11월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 입사했다. 레스토랑에 필요한 식자재와 기초재료들을 공급해 주는 부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과 달랐다. 1991년까지 양파 당근 등 온갖 식재료 껍질만 깠다. 3년 동안 껍질 까고 짐만 옮겼다. 그는 “바로 요리할 생각은 안 했지만 3년이 걸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그만둘 생각은 없었지만 껍질만 까다 보니 돌파구가 필요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2년 경희호텔전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음식이야 평생 만들 것이고 만날 호텔에서 선배들에게 배울 수 있으니 주방에만 치우지지 말고 호텔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 회계, 서비스 마인드 등을 배우면 좋겠다 싶었다.

변화의 시작은 주인의식
그렇게 배운 게 큰 도움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지난해 12월 박 조리장은 브래서리의 주방과 홀을 모두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경영 마인드에 특유의 장인정신까지 겹쳐지니 레스토랑이 확 변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34명을 포함해 총 74명의 레스토랑 직원들에게 하루에 e메일 10통을 보냈다. 매일 들어오는 식자재 상태부터 가격, 뷔페 테이블 상태까지 꼼꼼히 알렸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서비스도 달라진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같은 재료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도 만드는 사람의 자세와 생각에 따라 음식맛이 달라진다”며 “기계적으로 음식을 만들던 회사원이 장인으로, 서빙하는 직원들은 음식 맛을 더해주는 멋진 배경 같은 존재로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주인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식부터 양식까지 매일 250여 가지 음식을 만드는 뷔페에서 혼자 잘한다고 레스토랑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

서비스와 맛은 그의 자존심
그러자 반응이 왔다. 손님들이 “갑자기 변했다”며 서비스와 맛에 높은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매출도 늘었다. 호텔에서 13년 만에 시설투자도 하기로 결정했다. 박 조리장부터 직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한 덕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가치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기껏해야 200∼300원 하는 계란으로 만든 계란프라이가 레스토랑에서 비싼 이유는 흰자를 퍼지지 않게 하고 노른자는 동그란 모양으로 만드는 세심한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정성과 주인의식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는 서비스와 맛에서는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롯데호텔이나 신라호텔보다 그의 레스토랑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이다.

그런 그가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떠벌리고 다닌다. ‘우리 아버지가 요리사인데 우리나라 최고다’라고. 학교에서 다 안다. 그러니 도시락이라도 싸 주려면 대충 만들 수가 없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전쟁 치르듯 음식을 준비한다. 고객이 비싼 값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실력이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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