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건축가 우경국이 만드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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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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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품은 건축물, 인간을 담은 갤러리

팔십 살 먹은 커다란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어느 날 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게 됐다. 나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건축가 우경국(예공아트스페이스 대표)은 모두가 예상하는 ‘당연한 답’을 무시해버렸다. 그는 건물과 나무의 공존을 택했다.

○ 상수리나무를 보듬은 미술관

오늘날 우리는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식 집에서 산다. 한복은 특별한 날에만 입고 한옥은 마음먹고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은 과연 일상에 섞일 수 없는, 불편하기만 한 것일까. 우경국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전통 건축이 서양의 그것에 비해 얼마나 장점이 많은지를 알게 됐다. 그의 건축 철학엔 우리 전통을 존중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자연을 극복할 대상이 아닌 수용하고 더불어 살아야 것으로 여겼다. 집밖의 경치를 ‘빌려와’ 집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자연의 풍경을 건축을 구성하는 일부로 수용하는) 차경(借景)기법이 대표적이다. 또 집에 바람길을 만들어주고 지붕과 처마선을 산 능선을 따라 이어나갔다. 우경국은 경기 파주시 헤이리에 있는 백순실미술관에 이런 개념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미술관은 80년 된 상수리나무를 그대로 보듬은 모습으로 지어졌다.

우경국은 한국건축대상과 건축가협회상을 받았으며 외국의 유명 건축 잡지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그는 “건축은 인간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한다. “건축물에 인간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 안에 담긴 사람이 어떤 행위와 사고를 하게 하고 무엇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건축가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이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요즘엔 틀에 넣고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주된 거주 형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 틀에 구겨 넣어진 채 살아간다. 모든 이가 비슷한 생활양식과 비슷한 생각을 하도록 짜맞춰지는 것은 아닐까. 우경국은 이런 틀에서 벗어나고자 헤이리에 직접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만들었다. 바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MOA(Museum Of Architecture) 갤러리다.

그에게 물었다. “본인이 직접 집을 지으면 다른 사람의 집을 지을 때보다 제약이 없지 않나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실 수 있었겠어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내가 건축주가 되면 더 조건이 까다로워지죠.”

○ 집 안의 나무 그림자

그는 자신의 집을 지으며 ‘불편한 생활을 요구하는 건축’을 시도했다. 정보기술(IT) 발달과 아파트 생활로 게을러진 현대인을 성토하며 사람이 더 많이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는 전통 건축에 담긴 의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많이 움직일수록 뇌가 더욱 발달한다는 그의 지론도 한몫했다.

그의 집에선 목이 마를 때 침실에서 주방까지 물 마시러 다녀오는 거리가 정확히 60m다. 집 안에만 있어도 확실히 운동이 된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 “무슨 집을 이렇게 만들었냐”며 투정을 했다. 하지만 적응이 된 지금은 오히려 모두가 좋아한다고 한다.

우경국은 이사 온 첫날 밤 천창(天窓)을 통해 보이던 북두칠성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올려다본 천창에는 파란 가을하늘이 담겨 있었다. 어제 내린 빗물이 창 한쪽에 고여 있다 바람에 살랑였다. 그러자 집 안 곳곳에서 하늘거리는 물결무늬가 춤을 췄다. 기계가 필요 없는, 자연 그대로의 감미로운 인테리어였다.

창문 곳곳으론 나무의 푸르름이 스며들고 있었다. 백순실미술관처럼 나무가 한가운데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집에는 보이지 않는 나무가 있는 듯했다. 바람이 불자 나무 그림자들이 집 안에서 나부꼈다. 낯선 느낌. 순간 집 안에 있는 숲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숲을 담은 집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숲 속의 바람처럼 만들고 있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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