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질주 본능의 종결자’… 남자는 왜 할리데이비슨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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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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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두둥 두두두둥…

14일(현지 시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싱가포르 도로를 달리는 라이더의 모습. 약 10년 동안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탔다는 그는 할리데이비슨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로 즐기는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다. 싱가포르=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4일(현지 시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싱가포르 도로를 달리는 라이더의 모습. 약 10년 동안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탔다는 그는 할리데이비슨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로 즐기는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다. 싱가포르=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싱가포르 ‘신상’발표 현장


“제겐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에게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작은 키에 행여 발이 닿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러면 꿈을 그저 꿈으로만 간직해야 하니까. 조바심에 직접 충무로 매장까지 나갔다. 조심스레 커다란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위에 몸을 실었다. 발이 닿았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다’를 외쳤을 것이다.

학전소극장으로 돌아왔다. 그가 남긴 1000회 공연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는 곳이다. 여느 때처럼 통기타 하나 둘러메고 공연을 했다. 공연 중간 입을 뗐다. “마흔 살이 되면 할리데이비슨 타고 세계일주 하고 싶어요. 가죽점퍼 입고, 체인 같은 거 두르고… 그래서 매장에 가서 물어봤어요. ‘아저씨 저 한 번만 타 봐도 될까요.’… 발이 닿더군요.” 특유의 어눌한 말투였다. 마흔을 8년이나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의 생전 이야기다.

14일(현지 시간) 싱가포르 플라이어를 출발해 롱기스트 사우스이스트 사이드 터널을 지나 올드 싱가포르 그랑프리 익스프레스웨이를 타고 돌아오는 83km 코스를 할리데이비슨 ‘헤리티지소프테일’ 모델을 타고 달리니 그 말이 이해가 됐다. 이날 코스를 함께 돈 30대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내뿜는 굉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록 음악이었다.

최대 배기량 1802cc의 육중한 몸에서 나오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니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브이 트윈(V-Twin) 엔진부터 시작된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심장 박동처럼 터지는 공랭식 엔진 소리를 그도 분명 직접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이면 할리데이비슨을 세계 여행 파트너로 정했을까.

가장 미국적인 ‘할리데이비슨

할리데이비슨은 미국 브랜드다. 그냥 미국 브랜드가 아니라 가장 미국적인 문화를 품고 있는 브랜드다. 넓은 땅덩어리에 쭉 뻗은 직선 도로를 달리기 위해 시트 높이를 낮추고 발을 댈 수 있는 풋 포지션을 앞으로 당겨 오랜 시간 탈 수 있는 ‘크루저 모터사이클’로 만들었으니 태생 자체가 미국적이다. 짧은 거리를 빠르게 달리기 위해 상체가 본체 쪽으로 당겨지게 설계한 일제 바이크 ‘레플리카’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

13일부터 이틀 동안 싱가포르에서 열린 ‘할리데이비슨 아시아퍼시픽 다이렉트 마켓(ADM) 미디어 이벤트’ 행사도 미국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싱가포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파워, 박력, 스피드… 남자를 흥분시키는 게 다 있다▼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싱가포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30대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30도가 넘는 도로 위에서 내뿜는 소리와 열기는 하나의 록 음악이다. 싱가포르=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싱가포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30대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30도가 넘는 도로 위에서 내뿜는 소리와 열기는 하나의 록 음악이다. 싱가포르=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할리데이비슨의 2012년 신모델 발표와 시승, 브랜드 설명회 등으로 이뤄진 행사 기간 내내 본 조비의 ‘리빙 온 어 프레이어’, 건스&로지스의 ‘스위트 차일드 오 마인’ 등 가장 미국적인 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14일 오후 7시 싱가포르 마리나배리지에서 열린 2012년 신차 발표회는 특별했다. 아예 1969년 미국 뉴욕 주 북부의 화이트레이크 농장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야외 무대에서는 싱가포르 현지 밴드가 메탈과 록 음악을 연주했고, 무대 아래 전시해 둔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사이 곳곳에 놓인 드럼통 주위에서는 해골 문양이 그려지거나 ‘매드 도그(Mad dog·미친 개)’ 등의 글귀가 적힌 가죽점퍼를 입은 채 52대의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나눠 타고 온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이 맥주를 마셨다. 히피 정신이나 사회적 문제의식을 뺀, 겉모습과 ‘자유(Spirit of Freedom)’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이날 할리데이비슨 ADM은 차량 앞부분 바람막이(윈드실드)를 떼었다 붙일 수 있어 장거리는 물론이고 도심용으로 손색이 없는 ‘다이나 스위치백(FLD)’과 시트 높이가 655mm로 낮아 아시아인들도 쉽게 탈 수 있는 ‘소프테일 블랙라인(FXS)’을 선보였다. 이 정도면 164cm의 단신이었던 김광석도 편하게 탈 수 있었을 법하다.

아시아 시장에 눈돌리다

할리데이비슨이 한국과 인도 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8개 나라에 포진한 30개 딜러를 총괄하는 할리데이비슨 ADM을 설립한 것은 지난해 5월. 1903년 미국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허름한 목조건물에서 태어나 1912년 일본에 첫 해외 공식 딜러를 세워 수출을 시작하고, 1920년대에 이미 67개 나라에서 2000여 개의 딜러를 운영한 것을 생각하면 결코 빠른 편은 아니다.

뒤늦게 할리데이비슨 ADM을 세우고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 이유는 할리데이비슨의 미국 내 판매 실적 변화 때문이다. 85%를 넘던 미국 판매 비중이 올해 상반기(1∼6월)에는 64%로 떨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판매 비중이 36%로 늘었다. 이 기간 할리데이비슨은

13만3000대를 팔았다. 아시아 시장 비중은 9%다. 데이비드 폴리 할리데이비슨 ADM 디렉터는 “2014년까지 글로벌 판매 비중을 40% 이상으로 올릴 계획”이라며 “여기서 아시아는 할리데이비슨에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할리데이비슨 ADM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높다. 할리데이비슨 ADM 내 전체 4분의 1가량인 7개 딜러망이 국내에 있고, 지난해 할리데이비슨 ADM에서 팔린 차량 가운데 국내에서 팔린 비중은 약 36%에 달한다. ‘스트리트 글라이드(FLHX)’ ‘포티에이트(XL1200X)’ 등을 비롯해 약 5700대가 국내 도로를 달리고 있고, 이번에 선보인 2012년 신차 2종 역시 국내에서는 그보다 빠른 5일 이미 출시됐을 정도다.

마니아가 되는 까닭은

1981년 할리데이비슨 임원들은 자신의 몸에 할리데이비슨 로고를 문신으로 새겼다. 혼다와 야마하 등 일본 업체들의 약진으로 1969년 미국 레저용품 회사인 AMF에 인수된 할리데이비슨을 기존 임원들이 다시 사들여 재도약을 꿈꾸던 시기다. 당시 할리데이비슨은 할리데이비슨 오너들의 모임인 ‘H.O.G.’를 만들고 할리데이비슨 브랜드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알리기 시작했다. 그 뒤 할리데이비슨은 브랜드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가진 브랜드가 됐다.

실제로 할리데이비슨은 독특한 문화 그 자체다. 할리데이비슨 매장에서는 의류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케이스부터 자동차 핸들, 아기용 신발까지 판다. 130개국 1420개 지부에 속해있는 100만 명이 넘는 ‘H.O.G.’는 할리데이비슨의 디자인(Look)과 엔진소리(Sound), 독특한 진동감(Feel)을 할리데이비슨 최고의 매력으로 꼽으며 생활 속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할리데이비슨과 함께한다.

여기에 ‘이 세상에 똑같은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한 대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 갖춰진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바탕으로 핸들부터 시트까지 모든 부분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으니 그 애착이 어느 정도로 깊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30도가 넘는 싱가포르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나오는 ‘어두운 사막 고속도로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다. 달리는 중에도, 록 페스티벌 같은 신차발표회장에서도 내내 김광석이 떠올랐다. 그가 한 번이라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탔다면 분명 누구보다도 열렬한 할리데이비슨 추종자가 됐을 게 뻔하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오경필 중사 역을 맡은 송강호의 대사가 생각났다.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을까.”

▼‘할리…’ ADM 총괄매니저 프랭크 알브레히트 “아시아 젊은층을 ‘추종자’로 만들 겁니다”▼

싱가포르=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싱가포르=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시아 시장은 계속 성장하는 시장이고 매출도 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이 시장에서 제대로 할리데이비슨을 알리고 현지 법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할리데이비슨 아시아퍼시픽다이렉트 마켓(ADM)을 세우게 됐습니다.”

14일(현지 시간) 싱가포르 할리데이비슨 ADM 본사에서 만난 프랭크 알브레히트 총괄매니저(51·사진)는 할리데이비슨 ADM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할리데이비슨 ADM은 지난해 5월 한국과 인도 등 아시아 8개국 판매법인을 총괄하기 위해 설립됐다. 할리데이비슨이 해외시장 판매비중을 40%대로 늘리기로 하면서 나라별로 흩어져 있는 판매법인을 총괄하는 헤드쿼터를 세운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아시아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알브레히트 매니저는 “할리데이비슨 ADM에 속한 나라는 물론이고 호주 일본 등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리기 위해 싱가포르를 선택했다”며 “특히 아시아에서는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첫걸음을 뗀 지 1년이 조금 지났지만 할리데이비슨 ADM의 목표는 크다. 그는 “2016년까지 현재 30개인 딜러십을 두 배 이상 늘리고 할리데이비슨의 해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알브레히트 매니저는 “한국은 할리데이비슨 ADM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며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마케팅 활동 지원도 강화해 할리데이비슨을 더욱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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