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뮤지컬 ‘바람의 나라-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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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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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 살아난듯 주연들 생생한 절창

올해 발표된 창작뮤지컬 중에서 음악적 매력이 가장 돋보인다. 전작 ‘바람의 나라’가 강렬한 이미지에 주력한 ‘눈의 뮤지컬’이었다면 ‘바람의 나라-호동’(김진 작, 유희성 연출·사진)은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이는 ‘귀의 뮤지컬’이다. 체코 작곡가 즈데네크 바르타크는 고구려시대를 다루면서 중간 중간 유럽 포크댄스풍의 무곡을 등장시킨 ‘옥에 티’에도 불구하고 핵심 장면에선 아름다운 선율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데 성공했다.

호동왕자 역의 임병근과 낙랑공주 사비 역의 임혜영의 목소리는 고구려 고분벽화 속 사신(四神)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듯 고음역의 선율을 한껏 휘감아 도는 매력을 뿜어냈다. 특히 그동안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모범답안과 같은 연기와 노래만 보여주던 임혜영의 감춰뒀던 ‘끼’가 한껏 발산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음악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 개국 초기 3대에 걸친 대서사시를 다룬 전편과 달리 극의 갈등구조를 명확히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적 무휼(대무신왕)과 이상주의적 호동의 부자 갈등이 그 씨줄이라면 호동과 사비의 엇갈린 비극적 사랑은 그 날줄이다. 그렇게 음악이 살아나면서 만화 속 ‘닭살 멘트’들이 자연스럽게 노래가사로 소화되는 효과도 불러일으켰다.

이 뮤지컬이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기 위해선 그런 ‘비움의 미학’을 더 실천해야 한다. 원작 만화 속 등장인물을 덜어내고 불필요한 갈등관계는 더 잘라 내야 한다. 만화에서나 가능한 웅장한 전쟁 장면을 무대 위 군무로 담아내겠다는 무리한 발상도 과감히 접을 때가 됐다. 꼭 필요하면 고구려의 신수(神獸)로 등장하는 사신에 걸맞은 낙랑의 신수를 등장시켜 상징적 춤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낙랑의 자명고(북)를 지키는 충과 자명각(뿔피리)을 지키는 운, 그리고 그들의 배다른 여동생 사비를 단군신화 속 풍(風) 운(雲) 우(雨)로 형상화하는 ‘보탬의 미학’도 허할 수 있어야 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사비 역으로 하선진 씨가 번갈아 출연한다. 23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 4만∼8만원. 02-501-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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