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멍청해 보이던 불테리어, 산속 들어서자 ‘늑대무리’로 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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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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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멧돼지 몰이 나선 사냥개 3총사

쫓기는 멧돼지만큼 쫓는 사냥개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1년 넘게 훈련을 받아도 현장에 나가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7일 멧돼지 사냥에 나서기 직전 리더인 흰둥이(앞줄 오른쪽)와 누렁이(가운데), 막내 대가리(왼쪽)가 사냥꾼들과 함께 늠름하게 포즈를 취했다. 문경=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쫓기는 멧돼지만큼 쫓는 사냥개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1년 넘게 훈련을 받아도 현장에 나가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7일 멧돼지 사냥에 나서기 직전 리더인 흰둥이(앞줄 오른쪽)와 누렁이(가운데), 막내 대가리(왼쪽)가 사냥꾼들과 함께 늠름하게 포즈를 취했다. 문경=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헉!”

‘그들’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가 튀어 나왔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렇게 못생기고 작은 개가 멧돼지를 잡는다고?’

몇 초 동안 기자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그들.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어리바리하고 어설픈 인간이 사냥을 나간다고?’

○ 작지만 강하다

6일 오전 경북 문경의 한 야산. 멧돼지 사냥에 앞서 사냥의 절반을 좌우한다는 ‘그들’, 사냥개를 만났다. 사냥개들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 반, 걱정 반이었다. 진짜 사냥개가 맞을까라는 의구심과 이런 개를 믿고 사냥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우선 외모가 정말 볼품없었다. 영화 속에서 보던 늘씬하고 기품 있는 사냥개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키(어깨까지의 높이)가 50cm나 될까. 머리는 크고, 다리는 짧고, 눈은 일자로 쫙 찢어졌다. 얼굴은 항상 얼이 빠진 듯 멍한 표정이라 보고 있자면 웃음부터 터졌다. 기자의 표정을 읽었을까. 목줄을 쥐고 있던 김무섭 포수(39)가 말했다. “산에 한번 나가 보면 이 아이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생김새로만 판단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란 말이었다.

이들은 모두 ‘불테리어’종. 19세기 영국에서 불도그와 테리어를 교배한 투견이다. 불테리어는 그야말로 사냥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사냥개는 크게 조류를 사냥하는 조렵견과 산짐승을 사냥하는 수렵견으로 나뉘는데 불테리어는 멧돼지 곰 등 대형 짐승도 상대할 수 있는 대표적 수렵견으로 꼽힌다.

설명을 듣고 나니 개들이 달라 보였다. 다시 한번 찬찬히 훑어봤다.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듯 탄탄한 근육질 몸매가 우선 눈에 띄었다. 짧고 굵은 다리는 험한 산을 타기에 최적화된 모습. 김 포수는 “사냥개의 몸집이 너무 크면 멧돼지가 바로 도망가 잡기 힘들다. 적당히 커야 멧돼지가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어 잡을 기회가 많다. 또 개가 덩치가 크면 지구력이 떨어져 사냥감을 끈질기게 추적하기 어렵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게다가 이들은 그냥 불테리어도 아니었다. 냄새 잘 맡는 개, 잘 뛰는 개, 싸움 잘하는 개 등 다른 품종의 피를 섞어 만든 그야말로 ‘슈퍼’ 불테리어. 조남민 포수(38)는 “수년 동안 훈련 받은 혼혈 불테리어의 가격은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고 귀띔했다.

○ 제명대로 살기 힘들어

사람들과 있을 땐 순한 양 같지만 개들은 산에 발을 디디자 본색을 드러냈다.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 7일 오후, 이들이 사냥하는 모습은 늑대 무리를 떠올리게 했다. 포수와 함께 멧돼지의 이동 경로를 훑고 다니다 냄새를 맡으면 쏜살같이 달려갔다.

사냥은 철저한 협업으로 이뤄졌다. 먼저 세 마리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고 노련한 흰둥이(4년생)가 썰개(선두에 나서는 리더 개. 나머지는 밀개로 불린다) 역할을 했다. 흰둥이는 멧돼지 앞을 가로막고 다른 개들을 진두지휘했다. 밀개인 누렁이(3년생)와 막내 대가리(1년 6개월생·누렁이의 형제로 머리가 유독 커 대가리로 불림)는 멧돼지 주변을 빙빙 돌며 시간을 끌었다. 이들은 멧돼지가 도망치려고 하면 뒷다리를 물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섣불리 달려들진 않았다. 사냥개 가운데 ‘동급 최강’의 전투력을 가졌음에도 정면으로 맞서는 데는 신중했다. 이 모습을 본 조 포수가 말했다. “노련하게 길목을 막고 시간을 잘 벌어주는 개가 우수한 사냥개죠.”

아무리 신중해도 멧돼지 사냥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린다. 몸무게가 수백 kg에 이르는 멧돼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특히 입에서 10cm가량 튀어나온 수퇘지의 엄니에 제대로 걸리면 그 자리에서 사냥개의 숨이 끊어진다.

실제 김 포수는 며칠 전 본인의 사냥개 네 마리를 모두 잃었다. 구석에 몰린 수퇘지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덤벼드는 사냥개들을 차례로 엄니로 들이받아 절명시켰다. 이렇다 보니 전문사냥개 가운데 제명을 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멧돼지와 싸우다 죽는 경우가 가장 많고 사냥터에서 올무에 걸리거나 제초제를 먹고 죽기도 한다. 성철중 포수(47)는 “사냥개의 전성기는 체력이 좋고 경험까지 쌓이는 4, 5년생”이라면서 “하지만 일단 그때까지 살아남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위험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역시 고된 훈련이 필수일 터. 멧돼지 사냥개들의 훈련법이 궁금해졌다.

조 포수는 “생후 3개월까진 걷기 위주로 꾸준히 체력훈련을 시킨다”고 했다. 본격적인 산타기 훈련이 시작되는 시기는 생후 8개월 무렵. 이 과정에서 일명 ‘멧 테스트’라 불리는 멧돼지 적응훈련도 병행된다. 초반엔 사육하는 멧돼지 우리 근처에 사냥개를 풀어 간접접촉을 시키고 이후엔 우리 안에 사냥개를 넣어 사냥법을 익히게 한다. 생후 1년쯤 되면 실전에 투입된다. 하지만 초반 1, 2년은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기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처럼 어린 사냥개들은 의욕이 앞서 무작정 덤비다 다치기 일쑤다. 그래서 어린 개들에게는 팀플레이 숙지 훈련이 필수라는 것.

사냥을 마치고 해가 져 어둑해질 무렵 산에서 내려오는 길. 곁에서 흰둥이가 따라왔다. 이날 하루에만 40km 가까이 산을 탄 흰둥이는 혀를 길게 뽑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냥 도중 긁혔는지 다리엔 상처가 나 핏자국이 보였다. 한편으론 대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문경=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P.S. 뛰어난 사냥개 중국에 진상도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개를 이용한 사냥이 성행했다. 우리나라의 개는 사냥에 능숙해 중국에서 조공을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종이 세자로 있을 때 명나라 사신 황엄 등 5명에게 사냥개를 세 마리씩 선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사냥개를 비싼 값에 팔아 이익을 챙겼다. 세조와 세종이 명나라에 사냥개를 진상했다는 기록도 있다. 세종 10년에는 상호군 홍사석이 송골매 1연(두 마리), 큰 개 23마리, 숙록피(熟鹿皮·부드럽게 만든 사슴가죽) 300장을 가지고 명나라로 떠났다.

한편 태종 때 예조에서는 사냥과 관련된 규정 7개 조목을 만들었는데 짐승을 에워싸면 매와 개를 포위망 안에 풀어놓지 못하게 했다. 세종 때는 포위망 밖에서 화살을 쏘아 개나 말을 상하게 한 사람에게도 죄를 묻게 했다.

연산군은 사냥개를 궁궐 안에서 키우기도 했다. 사냥개가 많아 조회(朝會)를 하는 장소에 드나들 정도였다. 연산군은 사냥개 10마리가 어가(御駕·임금이 타던 수레)를 호위하게 하기도 했다.

출처: ‘역사 문헌을 통해 본 수렵문화’·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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