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고 없고, 뉘라서 나누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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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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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초대 국가 핀란드의 공예와 디자인을 조명한 전시관은 핀란드인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초대 국가 핀란드의 공예와 디자인을 조명한 전시관은 핀란드인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피카소가 디자인한 카펫을 거실 바닥에 깔고, 신디 셔먼의 사진 작품이 들어간 그릇에서 밥을 먹고, 데이미언 허스트의 나비 모티브가 찍힌 천 의자에 앉아 햇살을 즐긴다.

충북 청주시 내덕동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10월 30일까지 열리는 2011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총감독 정준모)는 이렇듯 예술이 일상으로 바뀌고, 일상이 예술로 진화하는 삶을 엿보게 한다. 현대미술작품과 더불어 예술가의 작업을 모티브로 한 일상용품도 선보여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겼던 현대미술의 또 다른 면모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7회를 맞는 비엔날레는 ‘有用之物’을 주제로 65개국의 공예와 디자인, 미술작가 3200여 명이 참여했다. ‘유용지물’이란 말엔 필요 없는 것 또는 서로 상관없는 것들이 만나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통합의 장, 통섭의 미학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에서 2004년 가동을 멈추고 방치됐던 낡은 건물이 행사를 통해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공예와 디자인에 현대미술을 수용한 본전시 ‘오늘의 공예’, 특별전, 초대국가전 등 주요 행사와 더불어 담배공장의 역사를 돌아본 전시까지 볼거리가 다채롭다. 뷔페처럼 푸짐한 상차림으로 친근감을 주지만 차분히 감상하기엔 다소 번잡한 느낌도 든다. www.okcj.org

○ 생활과 예술의 접목

이번 행사는 생활 속의 예술, 삶 속의 공예를 표방한 것이 특징. 본전시의 경우 전통적 공예 작업과, 유기체처럼 변화하는 공예의 현대적 측면을 5개 섹션으로 풀어냈다. 전시 첫머리는 수공예와 산업공예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미술공예운동을 전개한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1834∼1896)에서 출발한다. 그가 디자인한 조명등, 의자, 타일, 책 등 60점으로 한 공간을 너끈히 채웠다.

충북 청주시의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10월 30일까지 열리는 2011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본전시장. ‘유용지물’이란 주제 아래 새로운 공예의 가치를 탐색한 이 행사는 ‘쓸모’를 전제로 하는 공예를 넘어 예술적 공예를 포괄하는 통섭의 미학을 목표로 삼았다. 청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충북 청주시의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10월 30일까지 열리는 2011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본전시장. ‘유용지물’이란 주제 아래 새로운 공예의 가치를 탐색한 이 행사는 ‘쓸모’를 전제로 하는 공예를 넘어 예술적 공예를 포괄하는 통섭의 미학을 목표로 삼았다. 청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전통과 역사가 함께하는 공예에선 가야금 등 전통 악기를 디자인 측면에서 조명한 점이 색다르다. 공예가들이 아닌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업을 공예와 접목한 섹션에선 미니멀리즘 작가 도널드 저드가 디자인한 커피 테이블, 제프 쿤스의 비치 타월, 서도호가 디자인한 유리그릇을 볼 수 있다. 이어 쓰임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고유한 공예와 예술적인 공예가 어우러진다. 천 조각을 꿰매 만든 트레이시 에민의 대작, 실로 만든 신체기관으로 꾸민 메리 튜마의 설치작품, 스피커 선을 꼬아 만든 김영섭의 다양한 도자기, 눈에 안 보이는 공기의 통로를 비춰준 김지혜의 도자설치 등이 눈길을 끈다.

○ 쓸모와 쓸모없음의 관계

이번 전시에서 가장 흔히 보는 것은 의자다. 인간과 함께해온 디자인의 실천적 도구이자 공예의 대상물로 의자를 조명한 특별전 ‘의자, 걷다’에선 145명 433점으로 의자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오스트리아의 장인 미하엘 토네트가 만든 1860년대 의자부터 구스타브 스티클리, 마르셀 브로이어,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를 거쳐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한 입술 의자까지 생활의 필수품이자 예술로서의 의자를 바라보게 한다. ‘핀란드의 공예와 디자인’전은 전시구성과 내용이 매우 알차다. 큐레이터 마리트 메켈레는 전통과 정체성, 느림 등 소주제 아래 기능적이면서도 깔끔한 핀란드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간의 역사는 도구의 역사이며,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 도구는 손이다. 수공예의 의미를 확장해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운 삶에 기여하는 모든 것을 집대성한 비엔날레는 쓸모와 쓸모없음의 벽을 허물며 예술과 일상의 관계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청주=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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