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그가 그리우면 이젠 목포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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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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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문학관 내 전시실 30일 개관

《비릿한 바닷바람이 제방을 넘어 날아와 코끝을 찔렀다. 짙은 남색 바다 위에 점점이 박힌 하얀 고깃배 위로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쏟아진다. 전남 목포항의 평화로운 한낮 풍경.》

① 목포문학관 2층에 설치된 ‘김현관’의 내부. ② 김현의 책상을 허형만 시인이 살펴보고 있다. 고인이 1980년대 사용했던 
‘마라톤 타자기’와 하심전자의 16비트 컴퓨터가 눈길을 끈다. ③ 문학과지성사 창립 멤버들로서 이른바 ‘4K’로 불린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왼쪽부터). 1972년 서울 청진동 골목에서. 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목포문학관 제공
① 목포문학관 2층에 설치된 ‘김현관’의 내부. ② 김현의 책상을 허형만 시인이 살펴보고 있다. 고인이 1980년대 사용했던 ‘마라톤 타자기’와 하심전자의 16비트 컴퓨터가 눈길을 끈다. ③ 문학과지성사 창립 멤버들로서 이른바 ‘4K’로 불린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왼쪽부터). 1972년 서울 청진동 골목에서. 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목포문학관 제공
1970, 80년대 문단의 독보적 평론가였던 김현(1942∼1990·사진)은 이곳 부둣가를 뛰어다니며 초·중학교를 보냈고, ‘청년 김현’은 수산시장 옆 목포 오거리의 한 허름한 다방에서 김승옥 최하림과 의기투합해 1962년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행했다. 목포는 김현 문학의 고향이다.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목포시 용해동의 목포문학관. 고인의 21주기를 맞아 이곳에 그의 업적을 기린 ‘김현관’이 30일 문을 연다. 고인의 전시관이 마련된 것은 처음이다. 개관에 앞서 18일 목포에서 3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허형만 시인(목포대 교수)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목포 오면 너밖에 없다’며 저를 불러내셨던 선생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1980년대 중반 황동규 선생과 함께 내려오셔서는 (목포) 오거리에서 늦도록 소주잔을 주고받고, 서로 껴안고 했지요. 허허.”

허 시인은 고인을 “따뜻한 인품과 치열한 문학정신을 동시에 가졌던 분”이라고 떠올렸다. “그 정도 이름을 날렸으면 오만해지기 쉬운데 선생에게선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고 추억했다.

‘김현관’은 178.5m²(54평) 공간에 유품 30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연보와 주요 저서 등을 전시한 ‘김현의 밖’, 책상 타자기 친필 메모와 그림 등으로 꾸민 ‘김현의 안’ 2개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고인이 문우들과 함께 만들었던 동인지 ‘산문시대’(1962년)와 ‘68문학’(1968년),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의 계간지 1호(1970년) 등이 전시돼 있다.

고인은 한자 또는 식민지 글자가 아닌, 한글로 사유하고 활동한 4·19세대의 선두 주자였다.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 그리고 ‘김현체’로 따로 불릴 정도로 미려한 문장을 구사한 고인은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거장 비평가’의 인간적인 체취가 가득하다. 특히 1974, 75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유학 시절 보낸 편지에서는 문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이 엿보인다.

‘병익에게, 대학 강의는 거의 듣지 않고 매일 도서관에 나가서 일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내가 서울에서 너무도 공부하지 않고 놀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사치벽이 생겼다. 돈 안 드는 것으로는 산보고, 돈 드는 것으로는 음악이다./…/ 병익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성실성이지, 기교가 아닌 것이다.’(1974년 11월 10일 김병익에게 보낸 편지)

‘청준에게, 하도 시끌시끌하고 그러니 너에게밖에 편지할 놈이 없다./…/여기서 보니까, 너하고 최인훈만이 고통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열심히 글 쓰거라. 불행의 사진을 그리지 말거라.’(1975년 2월 17일 이청준에게 보낸 편지)

고인은 마흔여덟 이른 나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떴다. 전시관의 벽면에 새겨진 고인의 글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1988년 2월 20일 일기)

30일 개관식에는 김병익 김치수 황동규 황지우 정과리 씨 등 선후배 문인 30여 명이 목포를 찾을 예정이다. 두 번 죽기에는 고인을 추억하고 그리는 사람이 아직 너무나 많다.

목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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