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회화적 무대에 현대문명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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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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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오페라 ‘수궁가’

‘수궁가’ 중 별주부가 ‘토끼 간을 구해 오면 부귀영화를 얻는다’고 하자 일가친척들이 몰려와 빨리 길을 나서라고 재촉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제공
‘수궁가’ 중 별주부가 ‘토끼 간을 구해 오면 부귀영화를 얻는다’고 하자 일가친척들이 몰려와 빨리 길을 나서라고 재촉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제공
독일의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 씨(77)가 연출과 함께 무대미술까지 맡은 ‘수궁가’는 기존 창극의 색깔을 벗고 ‘판소리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다시 태어났다.

9∼1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 수궁가는 기존의 창극과는 분명 달랐다. 화가이기도 한 프라이어 씨가 빚어낸 무대는 매우 회화적이어서 동화 속의 세계를 보는 듯했다. 자라가 병든 용왕을 살리겠다고 토끼를 꼬여 용궁으로 데려오지만 기지를 발휘한 토끼가 죽을 위기를 벗어난다는 원작의 단순한 내용은 환경오염과 유토피아의 문제가 덧입혀져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우화로 손색이 없었다.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안숙선 명창은 길이 3m의 거대한 남색 치마를 입고 무대에 등장해 극은 초반부터 단박에 관객의 관심을 붙잡았다. 프라이어 씨가 직접 그린 흑백 톤의 추상적인 산수화 배경에 평면의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이 회화적인 무대를 완성시켰다. 육지를 양육강식이 철저하게 지배하는 혼돈의 세계로, 바닷속을 명령과 복종의 계급사회로 대비시킨 것은 얼마간 도식적이지만 깔끔한 느낌을 줬다. 바닷속 장면은 빈 페트병으로 가득 채웠는데 용왕의 병을 환경오염의 결과로 풀어내는 현대적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싸움이 끊이지 않는 육지에 염증을 느껴 자라를 따라 바닷속으로 가지만 용궁도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세계가 아님을 깨달은 토끼가 자신이 원래 살던 달나라로 돌아간다는 마지막 설정도 신선했다.

하지만 도창 안숙선 씨, 북 치는 고수와 가야금 연주자 3명을 제외하고 모두 가면을 씌운 것은 회화적인 무대를 완성하기는 하지만 누가 말을 하는지, 표정은 어떤지 알기 어려워 특히 등장인물이 많았던 1막에선 시간이 갈수록 지루해졌다. 또 영문 자막을 참고해야 할 만큼 뜻을 알기 어려운 옛 한문투 사설들을 굳이 고수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작품은 ‘Mr. Rabbit and the Dragon King(미스터 토끼와 용왕)’이라는 제목으로 12월 독일 부퍼탈 오페라극장에서도 공연된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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