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Focus]싱가포르-이슬람국의 ‘몽둥이刑’ 끝없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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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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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만약 우리가 사는 곳의 소년이 그(20세기 청소년들의) 반쯤이라도 나쁜 짓을 했다면… 그렇다. 그 소년과 아버지는 나란히 엎드려서 채찍을 맞고 있을 것이다. (중략) 선고 자체는 범죄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형벌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

소설의 무대는 미래의 지구. 주인공들은 ‘20세기의 무질서’를 회상하며 위와 같이 말한다. 미래 지구에선 청소년 범죄가 거의 없다. 태형이 선고되며, 범법을 한 청소년과 보호자가 함께 처벌받기 때문이다.

학교 체벌 금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체벌 금지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체벌 전면 금지에 대한 대안으로 ‘문제 행동 유형별 학생생활지도 매뉴얼’을 발표했다. 지각하면 노래 부르기, 수업 방해하면 반성문 쓰기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비인간적인 체벌보다 낫다”는 주장과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신체를 때리는 형벌인 ‘태형(笞刑)’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시한다면 어떨까. 학교 체벌을 두고도 논란이 분분한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실제로 죄인을 매로 다스리는 곳이 있다. 그것도 아프리카 원시 부족이 아닌 지역 문화권을 대표하는 문명국가 얘기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다. 이 나라들을 통해 ‘구시대의 악습이냐, 현대사회의 대안이냐’로 논란이 되는 태형 제도를 들여다본다.

○ 아이도, 여성도 맞아 봤다


“공무원이 되려거든 싱가포르에서 태어나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싱가포르 국경절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경제성장률 14.8%를 달성한 싱가포르 정부를 극찬했다.

말레이시아의 한 교도소에서 교도관이 발가벗은 죄수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내리치고 있다(위). 엉덩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게 부르텄고(가운데), 10여 대를 맞은 뒤엔 선혈이 낭자했다. 몇 년 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라 화제가 된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들.
말레이시아의 한 교도소에서 교도관이 발가벗은 죄수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내리치고 있다(위). 엉덩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하게 부르텄고(가운데), 10여 대를 맞은 뒤엔 선혈이 낭자했다. 몇 년 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라 화제가 된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들.
실제 싱가포르는 반부패 정치·경제 선진국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가끔 전혀 다른 이미지로 세계의 이목을 끌 때가 있다. 태형 논란의 경우가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4년 마이클 페이 사건이다. 당시 18세로 싱가포르에 놀러갔던 미국 청년 페이는 열흘 동안 차량 20여 대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의 장난을 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싱가포르 법원은 그에게 벌금과 태형 6대를 선고했다. 이에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미 정부는 “10대 청년의 불장난에 매를 드는 싱가포르를 규탄한다”며 성명을 냈고,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 “태형만은 안 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강경했다. 6대를 4대로 감형한 뒤 집행했고, 결국 페이는 초주검이 돼 고향땅을 밟았다.

인구의 60%가량이 이슬람교도인 말레이시아에서도 태형은 수차례 국제적인 이슈를 만들었다. 2009년 8월엔 이슬람법원이 말레이시아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로 당시 32세 여성 카르티나 수카르노에게 태형 6대를 선고했다. 여성에게 태형이 선고된 건 말레이시아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에 여성 인권침해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결국 말레이시아 정부는 쇄도하는 비난에 못 이겨 형 집행을 취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혼외정사를 하다 붙잡힌 여성 3명에게 태형을 집행하면서 결국 여성 태형 금기 원칙을 깼다.

그런데 이 정도는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기로 유명한 사우디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지난해 1월 사우디 북부 지역의 한 법원은 휴대전화를 가져간 게 발각돼 교장과 다투다 그를 폭행한 13세 여학생에게 태형 90대를 선고했다. 2월엔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는 이슬람법을 어기고 6명의 아내를 뒀다는 이유로 한 남성에게 태형 120대가 선고됐다. 또 6월엔 사귀던 여성과 쇼핑몰에서 키스를 했다는 이유로 역시 한 남성에게 태형 90대가 선고됐다.

○ 한 대 맞으면 머리끝까지 통증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태형을 당하면 얼마나 아플까.

싱가포르에선 길이 1.2m, 두께 3cm가량의 등나무를 회초리로 쓴다. 사극에서 봤음직한 두꺼운 곤장을 떠올리고 비웃으면 오산이다. 싱가포르의 한 교도관이 외신 인터뷰에서 한 설명은 이렇다. “회초리의 사이즈는 피부에 최대한의 고통을 안길 수 있게 제작됐다. 등나무가 칼날처럼 피부를 파고들어 엉덩이에서 머리끝까지 고통을 준다.”

게다가 그냥 치는 것도 아니다. 덩치 큰 교도관이 1m 이상 달려와 체중을 실어 엉덩이를 힘껏 내리친다. 건장한 남성도 몇 대 맞고 실신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절대 봐주지 않는다. 죄수를 병원에서 치료한 뒤 다시 형을 집행한다.

싱가포르에선 태형의 대상이 16∼50세 남성에 국한된다. 형 집행 전 의사가 봤을 때 건강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때리는 횟수도 최대 24대(청소년은 10대)로 제한된다.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와 비슷하다. 교도관이 등나무로 죄수의 엉덩이를 내리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도관이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때리는 간격이 좀 더 짧다는 정도.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은 매한가지다. 말레이시아의 교도관 아스칸다르 라지 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길이 1m가 넘는 회초리를 시속 160km로 휘둘러 90kg의 충격을 준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관련 보고서에서 “형 집행 뒤 많은 죄수가 성 기능 장애 등 각종 신체 장애에 시달렸다. 몇 년 동안 정신적인 후유증을 호소한 죄수도 있었다”고 비난했다.

사우디에선 태형 도구로 회초리와 함께 채찍이 사용된다. 옷을 입힌 채 집행하되 대상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공개 태형도 빈번하다. 사우디에서 3년 동안 건설 근로자로 일한 김상기 씨(34)는 2008년 사우디에 있는 한 광장에서 집행된 태형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원형으로 둘러싼 가운데 얼굴을 가린 종교경찰이 자기가 지칠 정도로 무자비하게 때리더군요. 나중엔 맞는 사람이 반실신 상태가 돼 비명조차 못 질렀죠. 육체적인 아픔도 그렇지만 수치심도 엄청날 것 같았어요.”

사우디 태형의 경우 강도는 다소 약한 편이다. 몇 대 맞아도 참을 만하다는 게 경험자의 증언. 문제는 횟수다. 채찍질의 경우 수백 대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 사우디 남성은 한 TV 토크쇼에서 자신의 성생활을 얘기했다는 이유로 징역 5년에 태형 1000대를 선고받아 화제가 됐다.

○ 범죄 예방 vs 인권 유린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들이 태형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범죄 예방 효과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초대 총리(87)는 집권 시절 “태형을 두고 일부에서 야만적, 권위적이라고 비난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1명을 때려 100명을 구한다고 생각해보라.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특히 태형이 재범 확률을 크게 낮춘다고 믿고 있다. 한번 맞아본 사람의 경우 때리기도 전에 기절할 만큼 ‘공포 효과’가 크기에 범죄자가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이러한 예방 효과를 확신한다. 교도관들을 초등학교 등에 보내 학생들에게 매질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 이들 국가의 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8년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에 따르면 싱가포르(0.7%)와 말레이시아(0.73%)의 범죄율은 미국(4.16%)은 물론이고 한국(1.66%), 일본(2.3%) 등보다도 훨씬 낮았다.

중국계가 대부분인 싱가포르와 달리 중동 국가 사우디에서의 태형은 종교적인 원칙을 지킨다는 목적이 더 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태형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목적이야 어쨌든 태형 제도를 향한 손가락질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태형을 두고 ‘잔인하고 모멸감을 주는 비인간적인 형벌’이라고 했다. 싱가포르에서처럼 사람을 발가벗긴 채 팔다리를 묶고 신체적인 고통을 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고문이고, 따라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태형 폐지론자들은 “태형과 범죄 예방 효과 사이의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밝혀지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 아무리 훈련을 받고 숙달된 교도관이라도 똑같은 힘으로 매질을 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형 집행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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