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레스토랑]임피리얼팰리스호텔 ‘베로나’ 이찬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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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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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접시위에 프랑스 맛 그리는 예술가

붉게 물든 이찬오 셰프의 짧은 머리 스타일만 보면 그의 요리도 톡톡 튈 것 같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붉게 물든 이찬오 셰프의 짧은 머리 스타일만 보면 그의 요리도 톡톡 튈 것 같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하얀 접시 위에 달랑 놓여 있는 굴 하나. 명색이 요리라고 내놓은 이 굴의 정체는 바로 굴샌드위치. 어딜 봐도 빵은 없는데 왜 샌드위치일까 의아했다. 잘 살펴보니 굴 밑에 햄도 깔려 있고 치즈도 뿌려져 있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굴을 입안에 넣었다. 물컹한 굴을 어금니로 씹자 굴 안에서 묘한 빵 냄새가 퍼져 입안에 가득 찼다. 이게 뭐지? 굴을 잘근잘근 씹어 삼킬 때쯤 묘하게 머리와 입엔 굴샌드위치를 먹었다는 신호가 입력됐다.

호주 유학중 천직 찾은 28세 훈남

이찬오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셰프가 호주에서 일할 당시 현지 언론에 소개된 굴샌드위치다. 당시 ‘형식을 파괴하는 젊은 요리사’로 선정된 이 셰프는 굴 안에 빵을 부풀리며 특유의 고소한 냄새를 풍기게 만드는 이스트를 주사기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굴 샌드위치를 표현해 냈다. 올해 28세가 된 젊은 요리사의 톡톡 튀는 발상에 입도 눈도 즐거워진다.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이탈리아식당 ‘베로나’에서 만난 이 셰프는 불과 20일 전만 해도 ‘대한민국 군인’ 신분이었다. 이달 초 제대하자마자 호텔에 입사한 그의 머리는 붉은빛으로 물들었지만 여전히 짧았다.

하지만 요리 하나하나를 들어 테이블에 진열하는 그의 모습은 섬세한 작가처럼 보였다. 적당히 삶은 바닷가재에 당근 퓌레와 꽃이 함께 장식된 요리는 화려한 색 때문에 눈부터 즐거워졌다. 한입 베어 무니 바닷가재 위에 놓여 있던 캐비아가 가진 바다향이 입안을 파도처럼 감싸 안았다. 땅 냄새 가득한 숯 향이 잔잔한 파도처럼 바로 이어졌다. 마치 모래사장 위에 비스듬히 누워 눈앞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셰프는 “바닷가재 자체가 달콤한 식재료이기 때문에 꽃의 쌉쌀함이 더해져도 음식으로 큰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그가 선보인 요리는 하얀 액자 속 정물화처럼 정갈하고 다소곳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그가 선보인 요리는 하얀 액자 속 정물화처럼 정갈하고 다소곳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실 이 셰프에게 요리란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리는 그림과도 같다. 고교 졸업 후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하기 위해 혈혈단신 호주로 건너간 그는 용돈을 벌기 위해 현지의 한 레스토랑에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로 취업했다. 막상 접시를 닦으며 어깨 너머로 본 셰프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천직을 찾았다.

“어느 날 테이블에 나가기 전 하얀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이 마치 그림처럼 보였어요. 마치 하얀 액자 속에 들어간 한 폭의 그림처럼요. 어릴 때부터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던 저로선 이렇게 좋은 직업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각가였던 아버지와 의상디자이너로 일했던 어머니, 그리고 지금은 보석디자이너로 일하는 여동생까지 ‘끼’가 넘치는 집안 분위기로 미뤄 봤을 때 요리사라는 그의 선택은 너무 당연했을지 모른다. 이 셰프는 “스포츠마케팅 공부 대신 셰프가 되겠다는 마음을 정하는 데 그렇게 1년이 걸렸다”며 “이후엔 단 한 번의 고민과 망설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호주에서 6년을 보냈다. 그는 꽤 이름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로도 일했다.

프랑스에서 정통을 배우다



하지만 프랑스 본토에서 프랑스 정통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열정을 감출 순 없었다. 정석을 배우려면 무조건 건너가야 했다. 무모한 건지 용감한 건지 이 셰프는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프랑스 파리의 모든 레스토랑에 자신의 이력서를 e메일로 보냈다. 회신이 올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19세기 요리법 그대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이었다. ‘한 번 와보라’는 짧은 e메일 회신을 믿고 그는 호주 생활을 정리한 뒤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경험한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고됐다. 호주에선 명색이 헤드 셰프로서 자기 색을 낼 수 있었지만 파리에서는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일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이 셰프는 “그렇게 한 달 월급을 받으면 평소 가보고 싶었던 최고급 레스토랑을 찾아가 나만의 만찬을 즐겼다”며 “사실 그것도 하나의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러다 과거에 같이 일했던 동료로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직은 젊기에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다. 채 1년이 안 되는 기간을 헤이그에서 셰프로 활동하다 2009년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군 입대 후에도 공관 요리병으로 일하며 요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개월의 군 복무 후 단 하루의 백수 시절도 없이 호텔에 들어왔다. 기자와 만난 날 이 셰프는 도가니를 삶아 허브에 재우고 복어의 곤이를 삶아 그릴에 살짝 구운 요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베로나는 이탈리아식당이지만 이 셰프가 선보이는 요리는 모두 정통 프랑스 요리다. 국내엔 이렇다 할 정통 프랑스 식당이 많지 않은 터라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은 이 셰프의 영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프랑스 요리를 소개할 계획이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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