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Q: 유럽 청년폭동 우리에게도 영향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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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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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고령화-청년실업… 세대갈등 주목

《재정위기의 한파가 몰아치는 유럽에서 청년 세대의 분노가 폭발했다. 실업난을 배경으로 아테네, 파리, 마드리드를 거친 청년층의 시위는 폭동과 약탈로 비화해 영국을 강타했다. 이는 세대갈등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계급갈등인가. 이들의 폭동은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인가. (ID: eunj****)》

이 질문에 대한 고전적 해답의 실마리는 카를 만하임이 1922년에 쓴 ‘세대문제’라는 기념비적 논문에서 찾을 수 있다. 지식사회학을 주창한 만하임은 사람의 사고나 행동은 그가 놓인 사회구조상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계급적 지위가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경험을 규정한다고 본 마르크스와는 달리 개인의 생애와 사회구조가 맞물려 빚어내는 ‘존재구속성’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의 역동성에 더 주목했다.

세대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생애주기를 함께하는 연령집단(코호트) 중에 동일한 체험과 의미를 공유하는 이들을 뜻한다. 세대 차이는 생물학적 나이의 많고 적음(연령효과)뿐 아니라 언제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느냐(시기효과)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 체험은 일생 동안 기억된다는 점에서 특별히 각인효과가 크다. 또한 공유하는 경험이 강렬할수록 세대의 정체성도 분명해진다. 따라서 물리적 시간과 체험된 역사 간의 긴장과 불일치가 커질수록, 그리고 놓여 있는 구조적 위치가 이질적일수록 세대 간 격차는 갈등으로 발전하기 쉽다.

이렇게 보면 유럽은 세대갈등의 구조적 요소를 고루 갖춘 사회다. 유럽의 ‘분노하는 세대’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승자독식의 결과, 나라에 따라서는 40%를 넘나드는 높은 청년실업률 속에 내던져진 자신들의 처지에 절망한다. 윗세대로부터 풍요와 자유를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은퇴해서도 풍족한 연금을 받는 ‘베이비붐 세대’와의 대비를 통해 이들의 박탈감은 증폭되었다. 최대 유권자인 베이비붐 세대에 포획된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진 위에, ‘자신들의 몫을 빼앗는 이민자들’을 향한 인종적 증오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고도성장기에 두꺼운 생산 연령층을 누렸던 인구 프리미엄은 급속한 고령화의 영향으로 급속히 줄어들었고, 이는 곧 부담으로 바뀔 기세다.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증가율은 미미하다 보니 청년실업도 심각해지고 있다. 더구나 압축적 성장을 이룬 한국은 ‘쌍둥이도 세대차를 느낀다’고 할 만큼 심리적 격차가 큰 사회다. 연령지배체제(gerontocracy)하에 선후배 간 질서가 분명하지만, 동시에 4·19세대나 386세대처럼 체제 전복의 전통도 화려하다.

하지만 과잉복지를 걱정하는 유럽에 비하면 우리는 ‘복지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복지는 그 설계를 둘러싼 미래형 갈등소재다. 현재 정치권의 무상복지 논쟁이 수상쩍은 이유도 미래에 누가 부담할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한국의 청년세대도 거리로 나설까.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청년세대의 문제는 연령효과라고 진단한다. 내가 ‘그때 그랬듯이’ 그대들도 지금 회복탄력성을 높여줄 성장통을 겪는 것이라고 다독이는 것이다. 반면에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의 바닥에 계급문제라는 복선을 깔아 놓고 부추긴다. 이 시기 자본주의의 온갖 구조적 모순을 뒤집어쓴 희생양이 바로 그대들 세대라고. 그렇다면 이 책들의 판매량이 우리 청년들의 선택을 가늠케 하는 투표용지가 아닐까.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

질문은 e메일(jameshuh@donga.com)이나 우편((우)110-715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일보 문화부 ‘지성이 답한다’ 담당자 앞)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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