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젊음은 외친다… 빵이 아닌 꿈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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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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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장강명 지음/352쪽·1만1000원·한겨레출판

서울 신촌의 부대찌개 집.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 대기업에 다니는 졸업생들과 그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박박 기고’ 있는 후배들이 모였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였다.

“요즘 학생들 패기가 없어 걱정이다. 세세한 스펙 따위에 목숨 걸지 말고 큰 꿈을 가져봐.” H그룹 인사부에 있는 한 졸업생이 타박하자 주인공 ‘나’는 발끈한다. “왜 청년들한테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나.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나이 상관없이 다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외의 반격에 당황한 졸업생이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고 내뱉자 ‘나’는 조롱한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소설가 장강명 씨(36)는 취업 기회뿐 아니라 꿈까지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을 ‘표백세대’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소설가 장강명 씨(36)는 취업 기회뿐 아니라 꿈까지 잃어버린 젊은 세대들을 ‘표백세대’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청년 세대들의 외침을 그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이들을 ‘표백(漂白)세대’라고 정의한다.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임무다. 사회를 바꿀 만한 리더가 되기는커녕 밥벌이 자리를 찾기에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고용 없는 성장 사회’의 희생양들이다.

이들은 하소연한다.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정치의 상당 부문을 담당했고, 199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대중문화의 중심이었지. 지금 우리는 작은 유행 하나 만들지 못해.”

그렇다. 작품은 취업난 문제를 제기한 ‘88만 원 세대’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 ‘표백세대’는 빵(취업)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꿈이고, 그것을 펼칠 공간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완벽하게 하얗게 칠해진(계층 구조가 공고해진) 사회에서 한 젊은이가 하얀 덧칠을 한다고 해도 표가 안 나는 게 ‘표백사회’다. 이들은 붉은 선을 긋기로 한다. 표백사회를 거부하는 인터넷 예고 자살이 그것이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뚜렷한 주제를 잡고 달려 나간 작품”이라고 말했다. 기자답게 미문보다는 사실관계 위주로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구사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의 탈출구 없는 눅진한 현실을 각종 팩트들을 종합해 전달한 점이 매력이다. ‘와이두유리브닷컴’이라는 자살사이트 글과 현실을 오가며 호기심과 긴장감을 높이는 구성도 신인답지 않게 촘촘하다.

그러나 배경이 된 대학을 ‘서열 상위 10개 가운데 후반’이라고 밝혔음에도 실제 작품 속에 그려지는 캠퍼스에서는 신촌에 있는 ‘상위 3개 이내 대학’이 쉽게 떠올라 혼동을 주며, ‘나’의 통장이 갑자기 없어져 고생하게 된다는 부분 등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청년들이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이 가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야’라는 식으로 이들을 설득하는 ‘나’의 주장은 상대적으로 비논리적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240여 편의 경쟁작을 제치고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화염병’을 들었으나 투척할 곳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시대 텅 빈 청춘의 초상”(박범신 소설가),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뛰어난 작품”(박성원 소설가)이라는 평을 받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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