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장경판전 내부 공개, 대장경 천년의 신비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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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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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크기 다른 붙박이살, 바깥바람 머물며 습도 유지
장마에도 실내는 보송보송

《빗장이 철커덕 풀렸다. 한 발을 내디디자 진하게 전해오는 묵향과 나무 냄새. 1000년 숨결이 깃든 ‘비밀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4일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 문을 열었다. 올해는 고려 초조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00년이 되는 해. 초조대장경 판각 1000년을 기념하는 KBS 다큐멘터리 ‘다르마’ 촬영을 위해 장경판전 내부를 공개했다. 대장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불교경전을 총망라한 것을 말한다. 가장 먼저 만든 것이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초조란 처음 새겼다는 뜻이다. 초조대장경은 불심을 통해 거란 침입을 물리치려는 호국의지를 담아 1000년 전인 1011년에 판각을 시작했고 1087년 완성됐으나 안타깝게도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이후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만든 대장경이 재조(再雕)대장경인 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경남 합천 해인사가 초조대장경 판각 1000년을 기념해 14일 팔만대장경 장경판전 내부를 공개했다. 장경판전은 과학적인 통풍구조와 바닥 처리로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존해 오고 있다. 합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경남 합천 해인사가 초조대장경 판각 1000년을 기념해 14일 팔만대장경 장경판전 내부를 공개했다. 장경판전은 과학적인 통풍구조와 바닥 처리로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존해 오고 있다. 합천=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위아래 크기가 다른 장경판전의 창. 내부습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준다.
위아래 크기가 다른 장경판전의 창. 내부습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준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해놓은 장경판전(국보 5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해인사 스님조차 드나들기가 어렵다. 해인사 홍보국장 종현 스님은 “한 번이라도 경판전에 들어가 경전을 직접 보기를 꿈꾸는 스님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누구든 장경판전에 들어가려면 종무회의에서 스님 10명의 만장일치로 허락을 받아야 한다.

며칠째 장대비가 이어지는 장마철인데도 장경판전 안은 보송보송했다. 붙박이살창이 뚫려 있어 외부 환경에 노출된 상태지만 건물 안과 밖은 완전히 달랐다. 구석에 놓인 온·습도계가 섭씨 24도, 습도 60%를 가리켰지만 서늘한 바람이 머물고 있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 보존국장 성안 스님은 “장경판전은 언뜻 어설퍼 보이지만 가장 과학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라면서 “다시 짓는다 해도 설계를 바꿀 필요가 없을 만큼 수분관리 기능이 완벽하다”고 설명했다.

장경판전은 조선 초인 15세기에 지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큰 손상 없이 경판을 보존해온 비밀의 핵심은 통풍이다. 장경판전 벽면의 아래 위, 건물의 앞면과 뒷면에 있는 창의 크기가 저마다 다르다. 내부로 들어온 공기가 맞은편으로 바로 빠져나가지 않고 아래위를 골고루 돌면서 적정한 습도를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또 바닥을 깊이 파서 소금 숯 찰흙 모래 횟가루를 층층이 쌓아 다졌다. 습도가 높으면 바닥이 습기를 빨아들이고 가물 때는 바닥이 습기를 내뿜도록 한 것이다.

성안 스님은 판가(板架)에서 경판 한 장을 조심스레 빼냈다. 경판은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의 일부로 정교하고 힘찬 글씨가 도드라졌다. 먹이 경판에 남아 있지 않도록 글자를 비스듬히 눕혀 새겼고 옻칠을 해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지 못하게 했다.

장경판전의 과학적 원리는 현대 건축기술을 능가한다. 1972년 해인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장경판전이 목조건물이라 허술해 보인다”며 경판을 보관할 건물을 새로 짓도록 지시했다. 당시 5억 원을 들여 최첨단 공법으로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위해 새 건물로 옮겨 놓은 일부 경판에서 뒤틀림과 결로현상이 생겼다. 경판 이전은 없던 일이 됐다.

초조대장경 판각 1000년을 맞아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실제 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실천지침을 만들고 있다.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은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마음 심(心)’”이라면서 “불우한 이웃부터 다문화가정까지 자비와 봉사를 실천하라는 것이 팔만대장경의 메시지”라고 전했다. ‘다르마’를 제작하는 KBS의 최근영 PD도 “팔만대장경이 역사로서가 아니라 실제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합천=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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