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한국선 못 떴지만 세계를 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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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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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더 유명한 국악그룹 ‘들소리’
50개국 공연 돌파 앞두고 기념무대

1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연습실에서 단원들과 함께한 들소리의 문갑현 대표(가운데). 들소리는 우리 전통 악기만으로 한국적인 맛을 살리면서 세계에서 통할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현대적인 음악을 추구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연습실에서 단원들과 함께한 들소리의 문갑현 대표(가운데). 들소리는 우리 전통 악기만으로 한국적인 맛을 살리면서 세계에서 통할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리는 현대적인 음악을 추구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조선시대 전국 각지를 돌며 음악, 노래와 춤, 기예로 서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던 유랑예인 집단이 있었다. 1900년대 들어 거의 명맥이 끊긴 남사당패다. 2000년대 세계를 무대로 유랑하며 세계인의 감성을 홀린 ‘글로벌 남사당패’가 출현했다. 국악 바탕의 월드뮤직그룹 ‘들소리’다.

2003년 싱가포르 아츠 마트 쇼케이스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서 지난해까지 47개국에서 586회 공연을 펼쳤다. 9월 예정된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공연을 마치면 50개국에 이른다.

1984년 들소리의 전신 ‘극단 물놀이’를 창단한 문갑현 대표(50)는 “국악과 출신이 아닌 데다 지방에 터전을 둔 그룹이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더라. 그러다 보니 해외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오늘날 현대적 감각을 버무린 국악 그룹은 많지만 들소리처럼 세계 무대에서 자생력을 확보한 그룹은 많지 않다. 국공립 기관의 각종 지원정책으로 보호받는 주류 국악 사회에 끼지 못해 활로를 찾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생력이 생긴 셈이다.

50개국 진출을 기념해 들소리는 24일부터 사흘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레퍼토리 공연 ‘월드비트 비나리’를 펼친다. 이번 공연은 사물놀이 연주에 축원과 덕담의 노랫말을 얹어 부르는 비나리를 발전시킨 것. 북 오고 장구 가야금 피리 태평소 대금 생황 등 다양한 국악기를 사용한 종합 국악공연이다. 출연진 10명이 ‘법고 시나위’ ‘승승장구’ 등 창작 연주곡 6곡, ‘사바하’ ‘뱃노래’ ‘상사몽’ 등 창작 노래곡 6곡을 선보인다.

부산 출신으로 경남 진주시 경상대 농학과(79학번)에 입학한 문 대표는 탈춤동아리 활동이 계기가 돼 1984년 동료들과 마당극을 전문으로 하는 물놀이를 창단했다. 정치적 성향이 짙은 마당극 공연부터 전통 마을축제 프로그램 개발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며 정체성을 탐색하다 1991년 들소리로 이름을 바꾸고 풍물놀이로 초점을 옮겨갔다. 1999년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무실을 얻어 중앙무대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살려고 발버둥치던 시절이었죠. 네임 밸류가 없으니까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요. 쓸 만한 친구들은 국공립 재단, 예술회관, 극장이 다 흡수해 가고. 먹고살려고 조명, 음향작업 등 닥치는 대로 했어요.”

2009년 덴마크 뉴코펜하겐 콘서트센터에서 열린 ‘들소리’의 워멕스(WOMEX) 공식 쇼케이스 공연. 동아일보DB
2009년 덴마크 뉴코펜하겐 콘서트센터에서 열린 ‘들소리’의 워멕스(WOMEX) 공식 쇼케이스 공연. 동아일보DB
그런 가운데서도 젊은 단원들을 혹독하게 연습시켜 실력을 키운 끝에 완성한 첫 레퍼토리 공연이 2001년 선보인 ‘타오(Tao·道)’다. 풍물을 바탕으로 고유의 마을 축제를 재현하는 총체극 형태로 역동적인 타악에 중점을 둔 공연이다.

2003년 싱가포르 아츠 마트 참가 이후 해외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한국 특유의 신명나는 타악이 단번에 외국 프로듀서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각국의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초청이 이어졌다. 2005년엔 월드뮤직 축제인 워매드(WOMAD·World of Music, Arts & Dance)의 본고장 영국에 한국 팀으로는 처음 공식 초청을 받았다. 2006년엔 타악 바탕에 기악과 성악을 더한 ‘월드비트 비나리’를 선보였다.

2008년 1월 미국 뉴욕 웹스터홀에서 열린 월드뮤직 쇼케이스 무대 ‘글로벌 페스트’에서 들소리는 세계 12개 참가팀 중 하나였다. 당시 들소리를 언급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전통과 스펙터클이 녹아 있다. 야외 농부들의 축제에서 길어 올린 사운드는 깊으면서도 이웃 동네까지 들릴 만큼 쿵쾅거렸다. 하지만 현대의 쇼 비즈니스적 감성도 있다”고 전했다. 2009년엔 21 대 1의 경쟁을 뚫고 세계 최대 월드뮤직 엑스포 워멕스(WOMEX)에도 공식 초청됐다.

그동안 출연료도 20배 가까이 올랐다. 처음엔 회당 1000달러 수준이었지만 이제 미주 지역에서는 회당 1만5000∼2만 달러, 유럽은 8000유로를 받는다.

문 대표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단원 27명 중 10명 이상이 10여 년간 동고동락한 사람들인데 아직도 제 대접을 못해줘 미안합니다. 일단 국내 전용극장을 마련해 무기한 공연을 펼쳐 안정적 수익구조를 마련한 뒤 미국 등 해외 전용관까지 마련하려 합니다.” 3만∼5만 원. 02-744-6800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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