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타고르-조선청년 1929년 대화록 ‘조선청년의 국가관’ 82년 만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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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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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 “조선은 일제 이익추구 수단일뿐”… 타고르 “체계적 교육으로 힘길러야 독립”
印출신 로이 부산외대 교수 글 발굴해 우리말로 번역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교수가 23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조선 청년의 국가관’이 실린 타고르 전집 8권을 소개하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교수가 23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조선 청년의 국가관’이 실린 타고르 전집 8권을 소개하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조선은 나약했습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과학적인 능력과 풍부한 경제력을 동반합니다. 나라를 되살리고자 한다면 묵상(默想)만이 아니라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가 일제강점기 한 조선 청년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이 82년 만에 발견됐다. 1913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는 1929년 일본 고베(神戶)대를 방문해 강연을 했으며 이 조선 청년과의 대화는 강연 후 질의응답 또는 강연장 밖에서 개인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화는 영어로 진행됐으며 이후 타고르는 이 대화를 ‘조선 청년의 국가관’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문집에 기록했다. 문집에는 인도 벵골어로 기록됐다.

이 기록은 2003년 인도에서 출간된 ‘타고르 전집’ 8권에 실린 것을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교수(55·인도어과)가 발견해 최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알려졌다. 23일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한 번역본에 따르면 타고르는 “민중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독립이 가능하다”며 독립을 꿈꾸는 조선 청년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 “교육으로 힘 길러야 독립 가능”

타고르
타고르는 이 청년에게 먼저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것이 달갑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청년은 “일본의 지배는 자본가의 다스림이고, 조선은 (일본의) 이익 추구의 수단일 뿐이며 ‘잔치 저장고’(일본의 전리품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의미)에 불과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자본가의 통치는 온 나라를 한 나라의 일용품으로 전락하게 합니다. 일본에 있어 우리는 탐스러운 물건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청년은 일본의 조선 지배가 자본주의적 착취구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로이 교수는 “타고르는 청년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 이 학생의 가치관에 대해서 해설하거나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청년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면서도 민중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으로 힘을 길러야 진정한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타고르는 이 청년에게 “조선 민중은 자기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받고 있습니까. 만약 교육이 없다면 일본이 떠나더라도 민중의 손으로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몇몇 사람의 힘에 기대서는 안 됩니다. 민중의 주체성을 깨닫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독립하면 자기방어 능력을 갖출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청년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듯 “독립을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법을 묻는 것입니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현대전에 걸맞은 군대와 부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라며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타고르는 “그런 언급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라며 “물론 조선이 (독립을) 포기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나 지혜로운 해답을 구하지 않는다면 입으로 쏟아낸 호언장담에 불과하며 허공에 쏟아낸 말과 같다”고 말했다.

○ 조선 청년은 누구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자 2면에 실린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 ‘빗나든 아세아등촉(燈燭·빛나는 아시아의 등불)’. ‘조선의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내용으로 일제 치하 조선 식민지 사람들을 격려했다. 동아일보DB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자 2면에 실린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 ‘빗나든 아세아등촉(燈燭·빛나는 아시아의 등불)’. ‘조선의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내용으로 일제 치하 조선 식민지 사람들을 격려했다. 동아일보DB
타고르는 이 청년에 대해 “여느 일본인보다 키가 훤칠하고 영어를 수월하게 하는 편이며 발음도 유창하다”고 적었을 뿐 정확한 신원을 감춰주었다. 로이 교수는 “타고르가 1929년 강연을 했던 고베대나 도쿄대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강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고 외부인도 강연을 들었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영어를 능숙히 구사하고 1920년대에 일본에서 유학을 한 점 등을 미뤄보면 당시 일제강점기에 귀족 또는 부호 집안의 자손이 아니었겠냐는 것이 로이 교수의 분석이다.

타고르는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빗나든 아세아 등촉(燈燭)’이란 시를 통해 조선을 ‘동방의 밝은 빛’으로 묘사했다. 영어로 쓰인 이 시는 당시 주요한 편집국장의 번역으로 동아일보 지면에 실려 식민지배에 움츠러든 국민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조선 청년의 국가관’은 벵골어로 쓰여 번역이 되지 않아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

인도에서 태어난 로이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후 63년 만에 10만 번째 귀화인으로 올해 1월 등록된 ‘한국인’이다. 1980년 한국에 온 로이 교수는 1985년 서울대에서 외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89년 부산외국어대 교수로 부임했다. 2005년에는 최인훈의 ‘광장’을 힌디어로 번역해 인도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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