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난을 치다, 나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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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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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조암란, 추사 김정희
향조암란, 추사 김정희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입니다. 역경(易經)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도 있습니다. 지초(芝草:버섯의 한 종류)와 난초 같은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고상한 교제를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으로부터 전수된 말 중에 ‘난을 치다’라는 멋들어진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말은 온갖 것들에 ‘치다’라는 말을 사용해 고스톱을 치고, 하숙을 치고, 돼지를 치고, 가지를 치고, 꼬리를 치고, 피아노를 치고, 손뼉을 치고, 못을 치고, 목을 친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다’는 말이 아무리 횡행해도 ‘난을 치다’만큼 고상하고 기품 있는 말은 드뭅니다.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극한까지 함축한 말, 요컨대 그것은 관조와 절제가 한껏 응축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방사우를 벗 삼은 우리 조상은 인생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난을 치고 살았습니다.

입신의 경지로 완성했다는 ‘불이선란(不二禪蘭)’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도 난에 대해서는 각별하고 엄격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추사는 “난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식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니, 만약 그리는 법식을 쓰려면 일필(一筆)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쳐 난을 ‘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완연히 다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난초를 그리는데 한 번 그림의 영역에 빠지면 곧 마귀의 길에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여 난이 단순한 그림이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

난은 여백과 여유 속에서 온전해지는 형상입니다. 그것은 선 것과 누운 것, 긴 것과 짧은 것의 조화를 바탕으로 선과 점만으로 미학의 정점을 만끽하게 합니다. 늘 푸르니 그것을 관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지조와 절개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뿐만 아니라 달관의 기품을 드러내는 난의 자태는 어지러운 인생살이의 와중에 인간의 격조와 향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자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난의 품성까지 깊은 도의 경지를 품고 있다는 걸 알고 나면 더욱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난을 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정신적 수양을 반영하는 행위입니다. 단순하게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 꾸밈없이 드러내는 성품의 반영으로서 난을 치는 행위는 곧 나를 갈고 닦는 수양행위와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난을 치는 일이 곧 나를 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 사람 단계자(簞溪子)는 난의 성향을 명쾌하게 종합한 ‘난이십이익(蘭易十二翼)’이란 글을 썼습니다. 지나친 햇빛도 지나친 수분도 지나친 애정도 난은 싫어한다고 그것은 가르칩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관조하는 일, 난을 대하는 일이 곧 나를 대하는 일입니다. 집안에 난 화분을 들여 난을 치고 또한 나를 치며 살아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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