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네모 세상, 네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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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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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힘’ 김영빈. 포털아트 제공
‘갇힘’ 김영빈. 포털아트 제공
어느 봄날 오전,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젊은 여직원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갑니다. 고층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풍경은 언제나 무감동합니다. 도로, 차량, 빌딩, 인파가 연출하는 장면이 무한 재생되는 필름처럼 막막하게 시선을 가로막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녀는 메모지를 꺼내 몇 글자를 적어놓고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기차역으로 가 교외선 열차를 타고 무작정 도심을 벗어납니다. 산과 들과 강과 하늘과 구름이 펼쳐지자 비로소 마음이 열리고 숨통이 트입니다. 그녀가 사무실에 남겨놓고 나온 메모지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네모에 갇힌 세상이 너무 지겨워 잠시 규격 밖으로 탈출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네모에 갇혀 불구가 되지 않았다면 오늘은 나를 찾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녀가 네모의 감옥을 발견한 것은 얼마 전의 일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그녀는 기계적인 회사생활, 기계적인 출퇴근, 기계적인 인간관계로부터 기이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명민한 그녀는 자신을 에워싼 외부세계를 세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래잖아 모든 문제의 핵심이 ‘네모’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네모 아파트, 네모 방, 네모 책장, 네모 테이블, 네모 침대, 네모 탁자, 네모 책, 네모 노트, 네모 빌딩, 네모 엘리베이터, 네모 출입문, 네모 모니터, 네모 휴대전화, 네모 내비게이터, 네모 창, 네모 전동차, 네모 시내버스…. 열거하다가 그녀는 돌아버릴 것 같아 머리를 감싸고 “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현대인이 현대화시킨 대부분의 것들은 네모의 규격 속에 갇혀 있습니다. 가로와 세로의 교차를 통해 탄생하는 무한 네모의 정글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인 답답함을 느끼며 여행을 떠나거나 밖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그것은 네모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이나 도피일 수 있습니다. 규격화된 네모 감옥에 갇혀 살면서 우리의 의식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네모가 됩니다. 네모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네모 안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네모의 표상이라고 과시합니다. 네모난 마음을 지닌 인간, 네모나게 각이 잡힌 인간은 융통성과는 거리가 멀고 자연스러움과는 더더욱 거리가 멉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형상이 없습니다. 그것은 네모도 아니고 세모도 아니고 동그라미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규격화되지 않고 한없이 자연스러워 형상으로도 성향으로도 언급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 네모의 정글에 갇혀 살아가니 답답하고 숨통이 막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어쩔 수 없이 네모의 세상에 갇혀 산다고 해도 시시때때로 네모의 공간에서 벗어나 숨통을 트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땅을 밟고 걷는 일,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야를 넓히는 일이 곧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일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나가면 네모가 사라집니다. 산과 길, 나무와 구름, 하늘과 바다는 모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연속성을 나타낼 뿐 규격화된 형상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우리는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꾸미지 않아도 스스로(自) 그럴듯한(然) 형상, 네모의 감옥에서 자주 벗어나 규격화된 마음을 해체해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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