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 많던 조선시대 宮家는 어디로 사라진 왕가의 집터를 추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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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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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숨겨진 궁가 이야기/이순자 지음/376쪽·1만3000원·평단

조선시대 한양에는 왕이 살던 궁궐 외에 왕의 가족들이 살던 수많은 궁가(宮家)가 있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은 궁궐이고,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집이자 고종이 태어난 궁가다.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는 의문을 가진 자에게 발견되기 마련. 서울시문화관광해설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뒤늦게 역사공부를 시작해 서울 사대문 안에 있던 궁가 26곳의 역사를 좇아 책으로 펴냈다. ‘조선의 왕들이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은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소박한 질문을 타임머신 삼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했다.

한양은 조선의 도읍이 되면서 왕과 왕족, 사대부, 관료, 백성들이 개성에서 대거 이동해 왔다. 왕이 거처할 궁궐이 세워지고 왕족과 관리들은 하사 받은 땅에 거처를 마련했다.

궁가는 ‘궁방’ ‘궁’으로도 불렸다. 아울러 장소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불리기도 했다.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다가 나중에 왕이 된 경우 옛날에 살던 집은 잠저(潛邸)라 했다. 세조가 혼인해 살았던 영희전, 광해군이 살았던 이현궁, 인조가 살았고 효종이 태어나 살았던 어의궁, 영조가 살았던 창의궁, 고종이 태어난 운현궁이 그렇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 장자로 왕위에 오른 이는 문종, 단종, 연산군 등 7명뿐이었다.

신분과 서열에 대한 구분이 엄격했던 영향으로 왕을 낳은 후궁은 죽은 후에 그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못했다.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던 왕자가 왕이 된 경우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왕의 부모를 모시는 사당을 역시 ‘궁’으로 불렀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 경종의 생모 희빈 장씨의 사당 대빈궁,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사당 도정궁,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 등이 있다.

혼기가 차서 출가한 왕자나 공주, 옹주가 살던 집도 ‘궁’으로 불렀다. 용둥궁, 계동궁, 사동궁, 소공주궁, 창성궁, 죽동궁 등이다.

궁가의 규모는 국가가 정했고,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그 수가 많아졌다. 궁가는 당시로서는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궁가의 이름이 그 일대의 지명으로 쓰이기도 했다. 소공주궁이 있던 곳이 소공동, 창성궁이 있던 지역이 창성동으로 불렸다.

궁가의 역사를 좇으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조선 왕실 가족사를 훑었다. 그러나 궁가는 일제가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면서, 또 고종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공공건물이나 주택, 고층건물이 들어서 흔적조차 알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세조의 잠저였던 영희전에는 서울 중부경찰서가,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이,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소생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이,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에는 국립서울농·맹학교가, 세종의 여덞번째 아들 무안대군의 궁가이자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안동별궁에는 풍문여고가 들어서 있다.

저자는 “‘대빈궁길’이 ‘삼일대로26’과 같은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길 이름으로나마 남아 있던 궁가의 흔적도 사라졌다”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영원히 사라질까봐 현재 위치라도 알리자는 심정으로 추적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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