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일탈 꿈꾼 박완서 40년 작품세계, 끊임 없이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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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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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와 박완서’ 30일 성균관대서 학술대회

《“박완서는 전통적 어머니보다는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여성’이다.”(이선옥 숙명여대 교수) “여성의 속물성, 욕망을 솔직하게 까발린 작가다.”(김양선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씨를 여성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국여성문학학회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30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6층에서 여는 ‘한국근현대사와 박완서’. 많은 독자들에게 푸근한 엄마나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박 씨의 작품 속에서 읽히는 여성적 욕망을 살펴봄으로써 ‘박완서의 재발견’을 시도하는 자리다.》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씨의 작품 속에는 일탈을 꿈꾸는 ‘욕망의 여성상’이 곳곳에 숨어 있다. 왼쪽부터 1944년 숙명여고 1년 때 모습, 등단 이듬해인 1971년의 모습, ‘도둑맞은 가난’을 발표한 1975년의 고인. 동아일보DB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 씨의 작품 속에는 일탈을 꿈꾸는 ‘욕망의 여성상’이 곳곳에 숨어 있다. 왼쪽부터 1944년 숙명여고 1년 때 모습, 등단 이듬해인 1971년의 모습, ‘도둑맞은 가난’을 발표한 1975년의 고인. 동아일보DB
이선옥 숙명여대 교수는 ‘박완서 문학과 여성성’이란 주제의 발제에서 박완서 작품 속 여성의 일탈과 욕망을 살핀다. 이 교수는 “박완서 문학은 전통적인 어머니의 역할 안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일탈을 꿈꿨고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일탈 열망이 솔직해진다”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후기 장편인 ‘그 남자네 집’(2004년)을 예로 들며 “여자 주인공이 결혼 이후에도 첫사랑 남자와 일탈하고 싶은 솔직한 속내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일상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날아가고 탈출하고 싶은, 발칙한 상상력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작가들이 노년기를 맞으면 이런 일탈 욕구를 작품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박 씨의 경우 점점 더 대담해졌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작품 활동을 하는 마지막까지 젊은 감각을 갖고 있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고, 성찰을 한 뒤에 좀 더 편하고 솔직한 글쓰기를 한 것”이라고 봤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페미니스트 박완서’를 조명했다. 그는 ‘한 페미니스트 인류학자가 읽은 박완서와 1980, 90년대 문단’ 발제에서 “박 씨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년)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 있는 여자’(1985년)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1989년)를 통해 행복한 결혼과 독자적인 여성의 삶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닮은 방들’ 등 1970년대 소설들에서 박 씨가 개발독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공공영역에 가려 별로 이야기되지 않았던 가정영역의 일상을 가감 없이 들춰냈다고 평가했다.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가진 듯했지만 여성 문제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놀라워 어떤 여성학 교재보다 흥미로운 텍스트였다”는 분석이다.

김양선 한국여성문학학회 회장(한림대 교수)은 “박 씨는 요즘 활동하는 어느 젊은 여성 작가 못지않게 자기 욕망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했다.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욕망을 단순히 드러내는 것만 아니라 전쟁, 가난 등의 시대적 배경과 결부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여성의 관점에서 본 시각 외에 박 씨의 문학이 가진 가치도 새롭게 조명한다. ‘박완서 문학비평과 담론권력’을 주제로 발제하는 이선미 동국대 교수는 “박 씨는 1990년대 이전까지 여성작가, 대중작가, 소시민적 작가라는 기존 남성 위주 비평권력이 정한 한계 속에서 저평가되고 왜곡돼 왔다”고 지적했다. ‘한국문학사에서 박완서의 위상’을 발표하는 이상경 KAIST 교수는 “40년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변화, 발전, 확장하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회를 맡은 박지영 성균관대 교수는 “(박완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통해 현대사의 맥을 짚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다. 특히 친일이나 전향 문제에서 자유로워 문학적으로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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