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오묘한 페이즐리, 빛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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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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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자존심 ‘에트로’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는 봄을 닮았다. 화려한 페이즐리와 강렬한 색감에서 꽃내음이 난다. 에트로에 여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다. 올 봄 에트로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드레스이지만 허리에 더블벨트를 매치시켜 모던하면서도 편안함을 강조했다. 에트로 제공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는 봄을 닮았다. 화려한 페이즐리와 강렬한 색감에서 꽃내음이 난다. 에트로에 여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다. 올 봄 에트로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드레스이지만 허리에 더블벨트를 매치시켜 모던하면서도 편안함을 강조했다. 에트로 제공
《산과 들녘에 색색의 꽃구름이 깔려 있다. 도로를 따라 핀 벚꽃은 꽉 막힌 도심의 숨통을 터 준다. 봄은 색을 거느리고 온다. 개나리의 노랑, 진달래의 진홍, 벚꽃의 분홍은 봄의 전령이다. 갈색 페이즐리(paisley·다채로운 문양)에 원색의 플라워 프린트를 담은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는 봄을 닮았다. 고대 인도 ‘생명의 나무’ 씨앗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었다는 에트로의 페이즐리는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봄의 풍경이다.》
전통과 현대의 변주곡, 페이즐리

1968년 탄생한 에트로는 명품의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 ‘오랜 전통’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에트로는 아르마니와 함께 많은 명품 마니아를 거느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로 대접받는다.

서양에서 탄생한 에트로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설적으로 동양문화에서 얻은 모티브였다. 여행광이었던 에트로의 창업주 짐모 에트로는 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외진 곳을 찾아다니다 인도 카슈미르 지방에서 발견한 전통무늬를 페이즐리 문양으로 재창조하며 에트로를 가방, 패션, 홈컬렉션에 걸쳐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울 수 있었다.

에트로를 대표하는 페이즐리는 철저히 수작업으로 그려진다. 쉽게 모방할 수 없을 것 같은 페이즐리는 디자이너의 영감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완성된다. 에트로 제공
에트로를 대표하는 페이즐리는 철저히 수작업으로 그려진다. 쉽게 모방할 수 없을 것 같은 페이즐리는 디자이너의 영감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완성된다. 에트로 제공
에트로 하면 페가수스 로고보다 페이즐리가 먼저 떠오른다. 에트로는 페이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상표 없이도 에트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각적 언어’가 됐다. 구불구불한 잎사귀 모양의 페이즐리는 인간에게 ‘보금자리, 옷, 나무’를 제공해주는 눈물방울 모양의 ‘생명의 나무’ 씨앗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번영과 영원한 삶’으로 의미가 넓어졌고 직물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패션 부흥기였던 18세기 초상화 속 많은 부잣집 여인들의 모습에서 페이즐리가 그려진 캐시미어 숄을 볼 수 있는 것도 페이즐리가 가진 의미 때문이다.

▼나뭇잎 구름 빛으로 신비스럽게▼

에트로의 홈 컬렉션은 커튼, 침구, 쿠션 등을 수공예로 만들어 고급 소비자층을 겨냥했다.
에트로의 홈 컬렉션은 커튼, 침구, 쿠션 등을 수공예로 만들어 고급 소비자층을 겨냥했다.
쉽게 모방할 수 없는 페이즐리는 올챙이 모양의 무늬가 이어지고 화려한 색상의 작은 무늬들이 빈틈을 메우고 있다. 보면 볼수록 신비감을 주는 페이즐리가 들어간 에트로의 핸드백과 스카프는 특별히 멋을 내려 하지 않아도 지적이고 매혹적으로 보여 패션 리더를 자처하는 여성들에게 사랑받는다.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는 에트로를 상징하는 페이즐리가 탄생하는 과정을 시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프랑스 리옹에서 40년 동안 페이즐리를 그려온 디자이너 세르주 마우리 씨가 직접 페이즐리 도안을 구상하고 그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마우리 씨는 담비털로 만든 붓에 물감을 묻히더니 1m 크기의 도안지에 올챙이 무늬와 손톱만 한 작은 도형과 꽃을 그려 나갔다. 멀리서 볼 때는 부정형의 페이즐리였지만 그 속에는 작은 무늬가 그려졌고 또 하나의 모양이 완성됐다. 시즌마다 새로운 페이즐리를 개발해 스카프는 물론이고 가방, 의류 등에 접목한다고 한다. 에트로 관계자는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서도 도안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리는 곳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복잡한 무늬 때문에 페이즐리에 수많은 색이 쓰일 것 같았지만 정작 쓰이는 색은 4, 5개를 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색을 사용하면 페이즐리가 가진 특색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색상은 단조로운 대신 셀 수 없이 작은 도형을 그려 넣는 식으로 페이즐리가 가진 비정형의 미를 만들어간다.

물감도 돌을 갈아서 만들거나 꽃, 잎사귀에서 추출한 천연 염료로만 만든다.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자연을 닮았다. 마우리 씨는 “페이즐리는 자연에 대한 디자이너의 영감을 구현하는 수단인 만큼 색도 자연에서 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완성된 페이즐리는 올가을 국내에서 한정판 스카프로 출시될 계획이다.

여러 부족의 기하학 패턴서 영감 얻어
올 봄 에트로 백은 갈색 페이즐리를 벗고 한층 컬러풀해졌다. 에트로 제공
올 봄 에트로 백은 갈색 페이즐리를 벗고 한층 컬러풀해졌다. 에트로 제공

백이나 스카프 못지않게 국내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여성복, 남성복 컬렉션도 페이즐리처럼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현재 에트로의 여성복, 남성복 컬렉션은 짐모 에트로 씨의 막내딸 베로니카 씨와 둘째아들 킨 씨가 이끌고 있다.

올 봄여름 에트로 여성 컬렉션은 보헤미안룩이 1990년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아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보헤미안룩의 자유분방하고 여유로운 스타일이 한층 글래머러스하고 고급스럽게 해석됐다. 페이즐리에 건축학적인 패턴을 더해 도시적인 느낌을 가미한 것. 보헤미안의 상징인 하렘 팬츠, 튜닉 톱, 칼라 없는 코트는 보다 심플하고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해 모던함을 살렸다는 평가다.

여성복 컬렉션 수석 디자이너 베로니카 씨는 “여러 부족의 기하학적인 패턴에서 영감을 얻어 강하고 모던하면서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여성들을 고려해 아이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나뭇잎과 구름, 그리고 빛으로 만들어졌습니다.”(남성복 컬렉션 수석 디자이너 킨)

올봄 남성 컬렉션은 캣워크에 잔디를 깐 지난해 패션쇼에서 볼 수 있듯이 에트로의 자연주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나무’를 내세운 에트로는 올봄 그린과 옐로를 대표 색상으로 내세웠다.

색상뿐 아니라 소재에서도 자연을 품었다. 수천 개의 바늘구멍으로 빛과 바람이 통과하도록 만들어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재킷에서부터 자연을 닮은 파스텔 색상들로 이뤄진 페이즐리의 시스루 셔츠, 얇은 실크가 능직으로 짜여 명암 대비를 이루는 이브닝 재킷, 커다란 잎사귀를 이용해 만든 듯한 레이스 셔츠 등은 입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매년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에트로의 ‘신상’ 백도 기하학적인 패턴과 스카프 패턴을 모티브로 한층 젊어지고 다양해졌다. 야자수와 꽃, 곤충 등이 부드러운 아르니카 캔버스에 펼쳐진 트로픽 드림은 클래식한 페이즐리와 현대적인 패턴이 어우러져 여심을 흔든다. 에트로의 스카프 패턴이 그대로 프린트된 편지봉투 모양의 클러치 백은 스타일링 효과도 크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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