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일상의 漢字들고 사색여행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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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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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우주
우석영 지음 760쪽·2만5000원·궁리

저자는 ‘宙(주)’자를 매개
로 우주의 기원과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잇달아 던지고 답
한다. 당나라 거울의 우주를 형상화한 그림.
궁리 제공(왼쪽), ‘思(사).’ 끊임없이 깊고도 넓게 질문하고 회의하
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케
하는 중요한 특성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오른쪽)
저자는 ‘宙(주)’자를 매개 로 우주의 기원과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잇달아 던지고 답 한다. 당나라 거울의 우주를 형상화한 그림. 궁리 제공(왼쪽), ‘思(사).’ 끊임없이 깊고도 넓게 질문하고 회의하 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케 하는 중요한 특성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오른쪽)
《일상의 한자(漢字)를 한 글자씩 손에 들고 저자는 사색 여행을 떠났다. 글자에 스며 있는 동양적인 철학과 세계관, 가치관을 탐색했다. 이 여행은 유희가 아니다. 글자를 매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또는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목표로 했다. 한국과 호주에서 사회학 문학 철학 등을 연구한 저자는 매일 새벽 써온 글을 다듬고 엮어 ‘한자를 재료 삼아 사색 훈련을, 사색 연습을 해보자는 하나의 초대장’으로서 책을 펴냈다. 생각의 재료로 사용된 한자는 모두 110자. 선별 기준은 세 가지였다. △한자 그 자체가 그림으로서의 예술성을 가진 경우 △그 그림이 함의하는 뜻이 의외로 깊거나 재미있어 무언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경우 △글자가 응축하고 있는 개념 자체가 철학적 함의를 지녀 보는 사람을 사색으로 이끄는 경우다. 저자는 이렇게 선별한 글자들을 존재의 지속성,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사색의 본질, 창조성의 경험, 더 나은 존재 상태와 대타(對他) 관계 등으로 나눴다. 그 사색 여행을 따라가 봤다.》

宙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주의 정체를 묻는 거창한 질문은 주가나 환율, 출세에 민감한 사람들로서는 하기 힘든 질문이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질문인 것은 아니다. 이 질문은 오랜 세월 인간의 머리에서 머리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하나같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어떻게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또 다른 질문에 도달한다. ‘우주란 무엇인가’는 바로 존재와 자연의 근원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백가쟁명의 상태에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제시된 폴 슈타인하르트와 닐 투록의 ‘순환론적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시초로 알려진 빅뱅은 수조 년마다 일어난다. 수조 년마다 새로운 우주적 시간이 시작되고 우주적 시간은 순환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주(宇宙)라는 낱말의 핵심은 공간적 무한성을 상징하는 한자어 우(宇)보다는 시간적 무한성을 상징하는 주(宙)자가 된다.

人 사람의 직립은 거대한 도약

다윈이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변별시키는 요소로 꼽은 것은 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이다. 이런 인간의 능력은 직립보행으로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서 진화했을 개연성이 크다. 고대 중국인들은 ‘人(인)’자를 직립 상태로 서 있는 사람의 옆모습에서 따왔다. 결과적으로 인간 지성의 발달이라는 함의를 글자에 담은 셈이다. 人은 말하는 인간이나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서 있는 인간, 즉 손을 사용하는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다.

그처럼 직립은 거대한 도약이었다. 인간은 도약된 존재자이기에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절망과 희망의 임자다. ‘도약’이란 ‘추락’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절망을 내포한 절대 경지”라고 표현했다. 한편으로 인간은 진화생명력에 의해 출현한 자연의 미미한 일점(一點)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思 생각은 윤리의 토대

‘田(전)+心(심).’ 사람의 뇌와 사람의 마음을 각각 지시한다.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한다거나 머리와 가슴은 생각이 실행되는 장소라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윤리 감각도 인간의 사색하는 능력의 발달과 연관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이것이 아니라 차라리 저것이 옳은가’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옳은 것은 아닌가’처럼 깊고 넓게 질문하는 능력과 태도는 사람이 널리 공유하는 윤리성 감수성의 근본 토대와 깊이 얽혀 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의 핵심은 사색하는 능력일 것이다. 곧 질문하는 능력이다. 의문을 품어보는 능력, 이성으로써 답을 찾아보는 능력이다. 참된 답을 향해 자신을 여는, 어떤 근원적인, 뿌리 뽑을 수 없는 마음의 지향이며 그리하여 참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지 않고서는 괴롭기 그지없는 마음의 지향이 사람이라는 존재의 핵심인 것이다.

鑑 타인이라는 유일한 거울

‘鑑(감)’은 거울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한자다. 사람이 아래를 들여다보며(仁)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臣) 아래에 있는 것은 물그릇(皿)이다. ‘물에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라는 의미다. 여기에 쇠(金)를 합하니 쇠거울인 것이다.

그러나 나를 온전히 비출 수 있는 것은 물거울도 쇠거울도 나도 아닌 내가 대하는 타인뿐이다. ‘나’란 외형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기품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인지하는 내가 곧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 나의 중대한 실체를 이룬다. 이런 의미에서 타인은 단지 여러 거울 중 하나의 거울이 아니요, 단 하나밖에 없는 거울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나의 실체에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나에 대한 나의 명상 혹은 사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만나는 길, 타인이 나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그의 반응 태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하고 상상하는 길일 것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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