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한의학에 미친 조선 지식인들’의 김남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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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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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 다산도 뛰어난 의학자였죠”

“많은 사람들이 한의학 연구가 조선시대의 중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시대정신’의 키를 쥐고 있던 지식계층인 양반들이 한의학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의 부제는 ‘유의열전’이다. ‘유의(儒醫)’는 일반적으로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저자인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교수(49·사진)는 “그동안 한국 의학사의 서술이 서양학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전통 의학에 대한 그러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의학에…’는 역사 속에 묻혀있던 유의 153명의 활동과 업적을 담은 책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양생을 직접 실천했던 퇴계 이황, 후손들이 문집인 ‘여유당전서’를 묶으며 의서를 두 종 포함시킬 정도로 의학연구에 매진했던 다산 정약용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의학자로 활동한 역사적 사실들이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1, 2주에 한 번씩 김 교수가 ‘한의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살을 덧붙였다. 그는 “유의 한 명당 원고지로 따지면 4∼5장 분량밖에 안 되지만, 그것을 쓰기 위해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의학과 관련된 기록이 있는지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 그들이 썼던 문집 등 저술도 꼼꼼히 살폈다”고 말했다.

책에는 빙허각 이씨, 사주당 이씨 등 여성 유의들의 활약상도 담았다. 빙허각 이씨는 1809년 태교, 육아 등 의학적 내용이 다수 담겨 있는 ‘규합총서’라는 여성용 백과사전을 편찬해 냈고, 사주당 이씨는 1821년 태교 관련 원고를 모아 ‘태교신기’를 저술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그들 이전에는 의서들이 주로 의약이론이나 처방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여성 유의들은 환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이는 현대 의료인들도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에 담긴 유의들 중 유성룡을 가장 인상 깊은 인물로 꼽았다.

“당시 시대 분위기로는 사람의 몸을 만지며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양반으로서의 위신을 지키지 못하는 일로 비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유성룡은 재상 출신임에도 ‘침구요결’과 ‘의학변증지남’이라는 2권의 저서를 남겼어요. 직접 백성들을 치료하며 지식인으로서 책무를 고민한 흔적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한의학을 이끌어왔던 근현대 인물들에 대한 책도 준비 중이다. 그는 “한의학 속에 숨어 있는 학술 사상, 관련 인물, 설화, 치료법 등은 한국 정신문화의 바탕이 되는 무형의 문화 콘텐츠다. 전통의학으로서 한의학이 그 위상을 되찾고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유의들의 치료술과 생명사상이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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