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간은 자유롭기에 ‘사랑의 열병’ 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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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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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지음 358쪽·1만7800원·사계절

강신주 씨는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욕구와 고민을 잘 이해하는 철학자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으면서 인문고전은 어렵게 여기는 사람들의 고민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철학을 이야기한다. 현실에서 접하는 문제와 고민을 놓고 인문고전을 인용하면서 사유하는 방식이다.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역시 같은 방식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인가’ ‘습관의 집요함’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다’ ‘기쁨의 윤리학’ 등 우리가 살면서 직면하는 질문이나 궁금증을 48개로 정리하고 동서고금의 인문고전에서 답을 구한다.

집착을 버리는 방법을 논하는 장에서는 불교철학자 나가르주나의 말을 가져와 공(空)의 지혜를 들려준다. 불교에서는 공을 깨닫게 된다면 모든 집착을 버리고 외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경지를 진여(眞如)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진여의 상태가 되면 어떤 집착도 없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외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계절 제공
사계절 제공
이 공과 관련해 나가르주나는 ‘중론(中論)’에서 ‘내가 없는데 어찌 나의 것이 있을 것인가. 나와 나의 소유가 없으므로 그는 나라는 의식도 없고 소유하려는 의식도 없는 자가 된다. 안으로나 밖으로 나라는 생각이 없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집착은 없어질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나’를 포함해 스스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은 인연의 마주침으로 빚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공의 지혜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자유와 사랑의 이율배반’이라는 글에서 저자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도 반드시 나를 사랑하게 된다면 이것은 행복한 사랑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면 사랑이 가지는 불확실성, 설렘, 두근거림과 같은 감정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도 자신을 사랑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이것은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컴퓨터나 의자처럼 스스로 행위를 결정하지 못하는 부자유스러운 것들을 ‘존재’로 봤다. ‘무(無)’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미리 주어진 본질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이야기는 매우 간단하다. 사랑에 빠진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타자가 자유롭게 나를 선택하는 상황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면 상대방이 나를 무조건 사랑하게 되는 경우보다 더 큰 희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설득의 기술’에 관해 저자는 한비자의 말에서 교훈을 찾는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逆鱗)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란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정치적 이념을 군주에게 설득하려 했을 때 군주의 의식적인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정서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무리 논리적인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수사학적 노력이 실패하면 그 주장은 채택될 수 없다는 통찰이 담겨 있다”고 풀이했다.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사는 현대인의 현실을 다룬 내용도 있다. 저자는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로마시대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바로 이 가면이 페르소나다. 훌륭한 배우는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맡은 배역을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도 그 배우와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연인으로부터 결별 통보를 받은 사람이 다음 날 회사에서 동료들을 만날 때면 밝은 표정을 짓는다. 삶은 마치 연극처럼 진행되고 있고, 그렇게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일찌감치 이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엥케이리디온’에서 ‘너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 인물인 연극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구실을 하기를 원한다면 이 구실조차도 또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썼다.

하지만 평생 가면을 쓴 채로 살 수는 없다. 에픽테토스는 페르소나에 집착하다가 민얼굴을 망각해선 안 되며, 민얼굴에 신경 쓰다가 페르소나를 경시하는 것도 금물이라고 말한다. “민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그는 ‘민얼굴을 찾는 방법’의 하나로 인문학을 들었다. 인문학적 사유를 하면 현재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보이면서 페르소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학은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벗고 민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강조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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