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8세 기생, 매화로 퇴계의 마음을 열다

  • Array
  • 입력 2011년 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우리 나무의 세계 1·2
박상진 지음 각 608, 572쪽·각 3만 원·김영사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떨어지면서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 ‘목백일홍’ 일부분이다. 시인은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 환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시인의 관찰력은 정확했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해 백일홍나무로 불렸지만 꽃 하나가 오래 피는 것이 아니다. 꽃 하나하나가 이어 달리기를 하듯 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100일 동안 피는 꽃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 책은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무령왕릉 관재 등 나무 문화재를 40년 넘게 연구해온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71)가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4대 사서를 비롯해 고전소설, 선비들의 문집, 시가집 등 나무와 관련된 자료를 발로 뛰며 찾아 꼼꼼히 읽고 정리했다.

출발은 지루한 나무 이야기를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 만든 강의록이었고 1998년부터 신문, 잡지, 인터넷 매체 등에 기고한 글도 담았다. “일반인에게는 재미없고 딱딱하기만 한 나무가 재미있고 유익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무에 얽혀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려 했다”고 저자는 밝혔다. 1000종이 넘는 우리나라 나무 중 242종을 골라 ‘꽃이 아름다운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약으로 쓰이는 나무’ ‘정원수로 가꾸는 나무’ 등 쓰임새별로 분류해 소개한다.

매화를 노래한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 중에 퇴계 이황만큼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이도
없다.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퇴계는 18세의 관기 두향이 선물한 매화에 감복해 그녀를 가까이 둘 정도였다. 사진 제공 김영사
매화를 노래한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 중에 퇴계 이황만큼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이도 없다.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퇴계는 18세의 관기 두향이 선물한 매화에 감복해 그녀를 가까이 둘 정도였다. 사진 제공 김영사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로 맺어진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퇴계에게 반해 전전긍긍하던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희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용하는 1000원권 지폐에도 퇴계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담겨 있다.

먹잇감으로, 약재로, 생활도구로 한없이 베풀기만 하는 나무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훼손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우려도 저자는 잊지 않는다. 해마다 봄이면 수난을 당하는 고로쇠나무.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로쇠물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단맛을 내는 성분인 자당, 과당, 포도당이 들어 있고 칼슘과 마그네슘 등 몇 가지 미네랄이 있는 정도다. 이런 성분은 우리가 먹는 과일에도 충분히 들어 있다. 특별한 병을 고치는 약리작용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단지 ‘약간 달큼한 천연식물성 건강음료’일 뿐이다.

본디 흔치 않았던 헛개나무는 간에 좋은 나무로 유명해지면서 우리 산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 열매만 따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째로 잘라 갔기 때문이다.

긴 설 연휴, 성묘 가는 길에 이 책을 손에 들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볼 만하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