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성당 안규태 신부 “수화하랴 말하랴, 미사 땐 정신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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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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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최초 청각장애인 위한 인천 청언성당 주임 맡는 안규태 신부

가톨릭 최초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청언성당의 주임신부를 맡은 안규태 신부는 “이름처럼 맑은 소리로 영혼을 이끄는 성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인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가톨릭 최초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청언성당의 주임신부를 맡은 안규태 신부는 “이름처럼 맑은 소리로 영혼을 이끄는 성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인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모임 장소도 없었던 우리가 모여 기도하고 대화하고, 무엇보다 미사 드릴 수 있게 돼 너무 좋아요. 하루빨리 완공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안규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최근 ‘인천가톨릭농아선교회’ 카페에 실린 청각장애인 신자 이상언 씨의 말이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4월 말 인천 연수구 청학동에 들어서는 ‘청언(淸言)성당’이다. 국내 가톨릭계에서는 2007년 서울대교구 박민서 신부가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로 서품됐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이 생기는 것은 처음이다. 이 성당의 주임신부를 맡는 안규태 신부(55)를 19일 오전 인천 중구 답동의 인천교구청(교구장 최기산 주교)에서 만났다.

청각장애가 있는 신자들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만 그의 말은 달랐다.

“내가 장애가 있다면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솔직히 자신 없어요.(웃음) 장애와 가난을 딛고 꿋꿋하게 기도하는 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순교자’입니다.”

그는 2001년 선교회 지도신부를 맡아 처음 청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 이들의 꿈은 소박했다. 미사 뒤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작은 공간만 허락받으면 좋겠다는 것. 청각장애인 신자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미사 뒤 점심을 먹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4월 말 완공되는 인천 청언성당 조감도.
4월 말 완공되는 인천 청언성당 조감도.
“수화도 못하는 내게 선교회 지도신부라는 소명이 떨어져 난감했죠. 한데 이들이 작은 꿈을 말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번 해 보죠’라고 대답했고,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기적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찾아왔어요.”

2002년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교구청 인근에 20m² 남짓의 ‘청언의 집’을 만들어 식사를 제공하면서 월 1회 수화 미사를 하고, 나머지 주일에는 주교좌성당에서 수화 통역을 통해 미사를 올렸다.

청언성당 건립은 교구 설정 50주년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지상 3층, 지하 1층에 120석의 아담한 규모다. 하지만 교구 전역에 1만2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값진 쉼터이자 신앙의 집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청각장애인 신자 고근인 씨는 “한국 최초 청각장애인 성당 건립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고, 다른 분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꿈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청각장애인들은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수화를 통해 전해지는 미사를 지켜보는 것을 빼면 강론과 교리 교육, 고백성사 등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불가능했다. 청언성당에서는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해 교리와 강론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높일 예정이다. 수화를 배운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수화 통역과 미사 집전에 참여하면서 장애인들의 신앙생활을 돕는다.

안규태 신부가 집전하고 있는 수화 미사.사진 제공 인천가톨릭농아선교회
안규태 신부가 집전하고 있는 수화 미사.사진 제공 인천가톨릭농아선교회
안 신부는 “담당 사제가 수화를 모르거나 수화를 어느 정도 익혀도 기존 성당에서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며 “청언성당의 완공은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있던 청각장애인에게 희망의 종소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 그의 말은 느리고, 유난히 손동작이 많았다. 평소 수화로 청각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 대화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평소 못 보던 다른 신부를 만나면 ‘왜 말이 어눌하냐’ ‘어디 아프냐’고 물으며 걱정합니다. 처음 수화로 미사 드릴 때는 말하랴 수화하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직업병이죠. 유아 프로그램 ‘뽀뽀뽀’ 진행자가 정말 쉽지 않겠다 싶었어요.(웃음)”

인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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