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서울 가나아트센터 시화전 ‘시화일률·詩畵一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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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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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한몸이었던, 시와 그림의 섞임

시와 그림이 교류하는 ‘시화일률’전에서는 조오현 시인의 ‘아득한 성자’를 회화로 재해석한 이인 씨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74명의 시인과 43명의 화가가 펼치는 소통의 장이자 그림 속의 서사성, 문학 속의 회화성을 짚어보는 자리다. 사진 제공
가나아트센터
시와 그림이 교류하는 ‘시화일률’전에서는 조오현 시인의 ‘아득한 성자’를 회화로 재해석한 이인 씨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74명의 시인과 43명의 화가가 펼치는 소통의 장이자 그림 속의 서사성, 문학 속의 회화성을 짚어보는 자리다. 사진 제공 가나아트센터
조오현 스님의 ‘아득한 성자’는 순간에서 영원을, 영원에서 순간을 꿰뚫어보는 정신의 깊이를 인정받으며 2007년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미술가 이인 김기라 씨는 같은 시를 읽은 뒤 각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씨는 캔버스를 붉게 칠한 뒤 얼굴 하나를 그렸고, 김 씨는 종이에 간결한 드로잉으로 주제를 표현하고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들 작품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2월 6일까지 계속되는 ‘시화일률(詩畵一律)전’에서 볼 수 있다. 현대시박물관과 계간 ‘시와 시학’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시는 형상 없는 그림이요, 그림은 형상 있는 시’라고 했던 선인의 마음가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기획자 문학평론가 김재홍, 미술평론가 윤범모 씨에 따르면 ‘시와 그림은 한몸이고 한마음이라는 그 엄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만남의 무대이다.

전시장에선 글이 그림에게, 그림이 시에게 말을 걸며 ‘아름다운 동행’을 추구한다. 시인 고은 김남조 김지하 김초혜 이시영 씨 등 74명의 시, 고영훈 권기수 김지혜 서유라 등 미술가 43명의 그림과 조각 80여 점이 어우러져 있다. 화가들은 대상이 되는 시를 읽고 스스로 시를 골랐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뿐 아니라 원로부터 청년작가까지 세대와, 극사실에서 추상까지 다양한 경향을 아우른 축제란 점도 주목된다. 서울 전시를 마치면 가나아트부산에서 2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이어진다. 02-720-1020

○ 시가 그림으로 거듭 나다

‘내려갈 때/보았네/올라갈 때/보지 못한/그꽃’

전시장 입구에서 고은의 시 ‘그 꽃’과 고영훈의 그림이 반긴다. 화가 김정헌 석철주 씨도 같은 시로 작품을 선보였다. 김지하의 ‘백학봉 1’을 다른 느낌으로 해석한 류민자 이종구 씨의 그림을 비교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고은 시인의 ‘그꽃’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고영훈 씨의 작품
고은 시인의 ‘그꽃’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고영훈 씨의 작품
종이책으로 읽다가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시를 찬찬히 감상하는 재미가 각별하다. 1부는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시와시학상 등 계간 ‘시와 시학’에서 주관하는 3대 문학상을 수상한 시단의 대표적 시인들의 작품이라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다. 2부는 이 잡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의 대표작을 모아놓았다. 화가 박대성 씨는 수묵담채 그림 한쪽에 정숙의 시 ‘처용아내’를 써넣었고,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씨는 김남조의 ‘면류관’을 모티브로 뒤러의 자화상에 면류관을 씌우고 늙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미디어작품을 내놓았다.

이 밖에 이기철의 ‘지상의 끼니’를 원고지 위에 밥주발로 형상화한 배종헌 정희성의 ‘봄날’을 책의 표지화처럼 그린 서유라, 유자효의 ‘세한도’를 깨알만 한 글자로 추사의 세한도로 재현한 유승호 씨의 작품 등이 눈길을 끈다.

○ 시와 시인의 체취를 만나다

주 전시와 별도로 시인의 체취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전시공간도 마련돼 있다. 만해 한용운이 직접 쓴 한시(尋牛詩) 10폭 병풍을 비롯해 서정주 고은 김지하 시인의 육필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청록집’ 등 희귀본 시집을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둘러보기를 권한다.

1, 2부 전시장을 잇는 통로에는 현대시박물관이 소장한 유명 시인의 초상과 대표시를 볼 수 있다. 다른 쪽 통로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시인 강은교 정호승 김종철 씨 등이 자신의 시를 친필로 쓴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술을, 미술 애호가에게는 시와 더 친해지는 길을 일러주는 행사란 점에서 누구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번 전시가 빡빡한 일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하늘에는 별이, 땅에는 꽃이, 사람에게는 시!’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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