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책의 바다’ 도서관의 속살을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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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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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위대한 도서관
최정태 지음 352쪽·2만 원·한길사

영국 옥스퍼드대에 있는 107개 도서관의 중심인 보들리언 도서관. 천장까지 이어진 서가에 책이 가득 차 있다. 1602년 세워진 이 도서관은 현재 법학도서관, 교육도서관, 사회과학도서관 등 15개 부속도서관을 거느리고 있다. 사진 제공 한길사
영국 옥스퍼드대에 있는 107개 도서관의 중심인 보들리언 도서관. 천장까지 이어진 서가에 책이 가득 차 있다. 1602년 세워진 이 도서관은 현재 법학도서관, 교육도서관, 사회과학도서관 등 15개 부속도서관을 거느리고 있다. 사진 제공 한길사
“나는 도서관의 원형이 언제 어디서 탄생했고, 어떻게 출발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고대 도서관 유적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초기 대학도서관을 들여다보고, 세계 공공도서관의 수준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그 속살도 만져보고 싶었다.”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런 생각으로 2년 동안 세계 곳곳의 12개 도서관을 방문했다. 직접 보고 들은 것 외에 여러 문헌에서 뽑아낸 자료를 버무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도서관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곳은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으로 꼽히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기원전 288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명에 따라 데미트리우스가 지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로마와 이슬람의 잇따른 침공에 시달리다 645년경 완전히 사라졌다. 고대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유네스코는 2002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최첨단 도서관을 설립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도서관의 창을 동쪽으로 냈다. 책을 오래 간직하려면 조금이라도 이른 시간에 태양을 맞이해 그곳에 소장된 파피루스를 햇살에 말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지은 도서관도 고대 도서관처럼 동북향으로 자리 잡아 아침 해를 일찍 맞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건물 외벽에는 인류가 만든 120개 문자를 음각했다. 상형문자 설형문자 갑골문자 한자 등이 섞여 있는 가운데 ‘월’ ‘강’ 같은 한글도 새겨져 있다.

미국의 보스턴 공공도서관은 매사추세츠 의회의 결의에 따라 1852년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시립도서관 형태로 설립됐다. 지금으로선 별일 아니지만 당시로선 서민들에게 복음과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부자나 귀족이 아닌 일반인이 도서관을 출입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도서관 건물 입구의 미네르바 조각상 위에 ‘FREE TO ALL(모든 사람에게 무료)’이라고 새겨진 글귀를 지금도 볼 수 있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미국 하버드대의 심장이다. 미 대륙에 도착한 개척자들은 1636년 보스턴 내륙 찰스 강 건너편 케임브리지에 이름도 붙이지 않은 작은 대학을 세웠다. 1638년 청교도 목사인 존 하버드가 이 대학에 책 330권을 기증했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1639년 대학에 하버드칼리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서관의 역사는 곧 하버드대의 역사였다. 하버드대 도서관에 대해 누군가는 “오늘의 하버드가 존재하는 것은 훌륭한 교수나 똑똑한 학생보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은 도서관과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책이 점점 늘어 새로운 공간이 필요할 무렵 한 청년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1915년 와이드너 도서관 설립의 계기가 됐다. 1907년 하버드대를 졸업한 해리 앨킨스 와이드너는 개인문고를 만들고 구텐베르크 성서, 셰익스피어 초간본 등 귀중서 3500권을 수집할 정도로 책을 좋아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베이컨의 ‘수상록’ 제2판을 영국에서 구입하고 돌아오면서 부모와 함께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다가 1912년 4월 14일 배가 침몰하던 밤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어머니는 하버드대에 200만 달러를 기부해 책을 좋아하는 아들을 기념하는 도서관을 짓도록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찾아간 저자는 학교에서 준 도서관 지도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총 107개의 크고 작은 도서관이 캠퍼스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1602년 설립된 보들리언 도서관이 있다. 독일의 작가 페터 사거가 보들리언을 보고 쓴 책에서 ‘책의 우주’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규모와 장서가 대단하다. 저자는 “장서가 1100만 권이니 가히 책의 우주라고 할 만하다. 사서들은 책의 수량보다 서가가 해마다 3.2km씩 늘어나 현재 190km에 이른다는 사실을 자랑한다”고 소개했다.

12개 도서관 가운데 저자는 전남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포함시켰다. 규모도 작고 책도 고작 7만 권 정도지만 우리나라에서 작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도서관 중 하나라고 부르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 나를 있게 해준 것은 우리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한 빌 게이츠의 얘기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미국 시애틀의 조그만 공공도서관에서 꿈을 키운 게이츠처럼 순천의 이 작은 도서관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오지 말란 법 없다”고 강조한다.

터키 에베소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그리스의 작은 섬 파트모스는 성 요한이 유배 시절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완성한 곳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요한수도원이 도서관과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각 장의 첫 글자를 황금으로 쓴 ‘마가복음’을 비롯해 2000권의 고서와 1만3000여 점의 성서 및 역사문서가 있다. 산꼭대기에 요새처럼 비탈진 고성(古城) 안, 적막이 감도는 도서관 입구 석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리석판에 고대 그리스어로 ‘영혼의 요양소’라고 새겨 놓은 글씨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책의 귀중함에 대해 쓴 경구가 쓰여 있다.

‘여기에는 찬란한 필사본들이 보존되어 있다. 현자들에게 책은 황금보다 귀한 것이니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다룰지어다. 이 수도원의 영광도 바로 이런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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