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제2의 개항’ FTA 시작과 끝… 막전막후 협상비화 상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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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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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김현종 지음 500쪽·1만9000원·홍성사

노무현 정부 시절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일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여러 나라와 FTA를 추진했던 주역의 회고록. 유엔 대사를 거쳐 현재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가 FTA 협상의 막전과 막후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책은 2003년 초 저자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수석변호사로 일하던 시절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그는 세계 통상이 다자 체제가 아니라 양자 체제로 변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큰 흐름을 놓치고 다자 체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당시 WTO 150개 회원국 가운데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몽골 등 단 두 나라였다.

통상교섭본부에서 일하게 된 그는 우선 어느 나라를 FTA 협상의 첫 상대로 할지 고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은 일본과 FTA를 추진하기로 약속했지만 그는 일본을 첫 상대국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손자병법’의 원교근공(遠交近攻·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의 이치에 따라 먼 나라와 먼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미국, 유럽연합(EU),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과의 FTA를 중국 일본보다 먼저 타결함으로써 아시아에서 통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였다.

2006년 1월 미국과의 FTA 사전 협상이 시작됐다. 자동차, 의약품, 쇠고기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쇠고기는 첫 협상 때부터 큰 문제로 떠올랐다. 뼈가 포함된 쇠고기의 포함 여부가 논란이 된 것이다. 미국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협상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자는 “그러면 한미 FTA 협상 출범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면서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면서까지 미국과의 FTA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당당하게 협상에 임했다고 회고했다. 협상은 2007년 3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8차 협상까지 거쳐 그해 4월 2일 최종 타결됐다.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협상은 밀고 당기기의 연속이었다. 어떤 날은 한국 협상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도 했고, 다른 날은 미국 측이 협상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협상의 막후에서 벌어진 일들도 책에 풍성히 소개했다. 2006년 2월 3일 미국 워싱턴의 상원의사당에서 한미 FTA 협상 출범을 선언하던 날, 저자는 미국 행정부 고위급 관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 일본대사관 직원이 이 관리를 찾아와 한미 FTA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한국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정직하지 않으니 한국과 FTA를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견제가 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 FTA를 타결시킨 뒤 저자는 곧바로 한-EU FTA 협상을 2007년 5월 7일 출범시켰다. 한미 FTA가 타결돼도 비준이 안 되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였다. 이를 포함해 통상교섭본부 재임 시 그는 45개 국가와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했고 이를 ‘제2의 개항’으로 표현했다. FTA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지닌 존재감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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