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호러로 시작해 코미디로 막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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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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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의 유령
대본★★★☆ 연출★★★ 연기★★★☆ 무대★★★★

화가 세실(윤정열·왼쪽)과 그의 모델인 마리(진경)가 극중극으로 한창 연기를 펼치는 사이에 불쑥 등장한 푸른 옷의 유령(황영희·가운데). 사진 제공 고양문화재단
화가 세실(윤정열·왼쪽)과 그의 모델인 마리(진경)가 극중극으로 한창 연기를 펼치는 사이에 불쑥 등장한 푸른 옷의 유령(황영희·가운데). 사진 제공 고양문화재단
시작은 호러다. 무대의 벽난로와 촛불에 불이 들어왔다 꺼지고, 벽에 걸린 초상화와 조각상이 절로 움직인다. 갑자기 창문이 열리며 어둠 속을 뚫고 검은 그림자가 마치 수평이동하듯 검은 화실 안으로 들어선다. 탁자 위 대본의 페이지가 절로 넘어가고 묵직한 탁자마저 무대 구석으로 처박힌다. 허걱!

다시 불이 들어오면 본격적으로 연극이 시작된다. 화가 세실(윤정열)을 둘러싸고 삼각관계에 빠진 두 귀족부인 마리(진경)와 마타(김로사)의 멜로드라마다. 배신과 음모, 독살로 점철된 연극의 종반부가 10여 분 만에 끝나고 커튼콜의 시간. 관객의 박수에 화답하는 세 배우 사이에 낯선 여인(황영희)이 불쑥 등장해 배우들 몫의 갈채를 함께 받는다. 누구?

고양문화재단이 기획한 창작극 ‘커튼콜의 유령’은 이렇게 복합장르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제목이 암시하듯 낯선 여인은 자살한 여배우의 유령이다. 여인이 유령임을 알게 된 배우들은 기겁을 하지만 종연(終演) 사흘을 남기고 ‘울며 겨자 먹기’로 무대에 선다. 끄응.

문제는 이 유령이 커튼콜 시간 때만 아니라 극 중간에 불쑥 끼어든다는 점. 게다가 유령을 짝사랑했던 단역배우 출신 남자 유령(엄효섭)까지 더해진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놀라지 않도록 유령들의 출현이 마치 극의 일부인 것처럼 애드리브 연기를 펼친다. 이때부턴 코미디다. 깔깔.

초반부에 등장했던 연극 장면이 세 번 더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기상천외한 내용으로 흘러간다. 전형적 신파극에 가깝던 연극은 갈수록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변해간다.

이 작품은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해제 씨 연극의 종합판이다. 극작가로서 그는 귀신 이야기에 일가견을 보여 왔다. 매일 밤 같은 사건을 반복하는 귀신들의 이야기인 ‘흉가에 볕들어라’와 사촌동생의 몸에 접신한 귀신의 한바탕 난장을 그린 ‘설공찬전’ 등이다. 연출가로서는 반복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일본 희극을 주로 연출해왔다. 희극작가가 말도 안 되는 검열관의 주문에 맞춰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빚어내는 ‘웃음의 대학’과, 여자극작가와 드라마PD의 뻔한 멜로드라마 내용을 3중의 극중극으로 펼쳐내는 ‘연애희곡’이다.

특수효과를 활용한 무대연출과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재미는 확실히 건졌다. 하지만 뭔가 깊은 사연을 지닐 법한 유령들의 이야기가 허술하다. 유령의 사연과 극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화룡점정이 아쉽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2만 원. 26일까지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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