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70代 '록의 대부' 다시 '전설'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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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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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씨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동숭동 대학로 소극장서 장기 공연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진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가든씨어터. 아담한 공간에 관객 5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10일부터 2011년 1월 15일까지 장기 공연에 들어간 ‘록의 대부’ 신중현(70)의 세 번째 무대다. 흰 양복을 입은 그가 무대에 들어서자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목에는 지난해 12월 15일 기타 전문 제작사 ‘펜더’가 그에게 헌정한 검은 기타가 걸려 있었다.

연주를 시작하면서 신중현은 눈을 감았다. 기타 줄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듯 튕기던 그의 손이 이윽고 자유롭게 기타 위를 오가기 시작했다. 음악이 빨라지거나 절정으로 치달을 땐 굳게 다문 입술을 더욱 앙다물었고 어깨도 들썩였다. 한 곡 한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그는 확인하듯 기타를 힘주어 잡았고 얼굴에는 흐뭇한 듯 미소가 번졌다.

첫 곡 ‘아리랑’에 이어 ‘빗속의 여인’ 연주를 끝낸 그가 기타를 들어 보였다. “전 세계에서 저까지 6명만 받은 기타입니다. 이 기타로 더 많은 음악을 들려드리려고, 은퇴도 무르고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한층 큰 박수가 쏟아졌다.

‘커피 한 잔’ ‘봄비’ ‘님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그의 대표곡이 이어졌다. 그의 보컬은 전성기에 비해 작게 들렸지만 흐느끼는 듯하다가도 돌연 힘을 폭발시키는 호소력 있는 창법은 여전했다.

노래가 이어지는 중간 중간 신중현은 관객들에게 노래를 소개하거나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주하기 전에는 “미8군 공연을 그만두면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김삿갓의 시에 곡을 붙인 ‘돈’을 연주할 때는 “이름도 얼굴도 세상에 감추고 권력과 동떨어진 시인 김삿갓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모두 사랑하네∼ 나도 사랑하네” ‘미인’을 부를 땐 관객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소극장 전체를 울리는 비트와 눈앞 가까이에서 선보이는 거장의 연주에 분위기가 잔뜩 달아올랐다. 그는 1시간 반 동안 총 16곡의 곡을 불렀다. 마지막 곡 ‘아름다운 강산’이 끝나자 관객들은 함성을 질렀고 기립박수도 이어졌다. 그도 활짝 웃으며 양손의 엄지를 세웠다.

12일 서울 대학로 가든씨어터에서 헌정받은 펜더 기타로 연주하는 신중현. 한 달간 장기공연을 여는 그는 “젊은층에게 내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객석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소극장으로 왔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사진 제공 메인기획
12일 서울 대학로 가든씨어터에서 헌정받은 펜더 기타로 연주하는 신중현. 한 달간 장기공연을 여는 그는 “젊은층에게 내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객석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소극장으로 왔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사진 제공 메인기획
“어머니가 팬이세요.” 공연이 끝나고 인터뷰를 위해 근처 음식점으로 이동하던 그에게 한 청년이 기타를 내밀었다. 청년은 기타와 연주 CD에 사인을 받은 뒤 악수를 청했다. 공개 장소에서 늘 팬에게 둘러싸이는 신중현에게는 친숙한 일이다. 기획사 측은 “80세 할머니가 손자를 통해 표를 예매하고 예매 확인 전화를 몇 번이나 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카키색 군복형 잠바에 같은 색 모자를 눌러쓴 록의 거장은 식당에 들어선 뒤 무너지듯 의자에 기댔다. 첫 이틀 공연 이후 ‘좀 더 음향이 받쳐줘야 할 것 같아서’ 경기 용인에 있는 작업실에서 아침 일찍 직접 대형 스피커 두 개와 앰프를 싣고 와 오후 내내 음향 조정하느라 몸이 지쳐 있다고 했다. “그래도 (건강에) 문제없어요. 음악이 인생 그 자체인데…. 한 달이 아니라 몇 달이라도 할 수 있어요.”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여기(대학로)로 왔어요. 록이 단순히 때려 부수고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라 일정한 틀 없이 다양한 형태로 선보일 수 있는 음악이고, 감정과 영혼을 건드리는 음악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는 “곡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영상 속에 가사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곡의 분위기에 따라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록의 특성상 가사가 또박또박 전달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펜더 기타로 연주한 지도 곧 1년이 된다. 그는 “내가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나오는 ‘주는 대로 받는’ 기타”라고 극찬했다. “진짜 좋은 악기는 누가 연주해도 좋은 소리가 나는 악기가 아니라 잘 연주하면 좋은 소리가 나고, 연주 실력이 떨어지면 소리가 안 나와야 해요.”

이 솔직한 악기에 그는 자신의 은퇴 여부까지 맡겨두었다. “걔(기타)가 그만두라고 할 때, 그때 그만둬야죠. 연주할 수가 없을 때…. 그런데 아직 그런 소리를 안 하더라고.(웃음)” 02-764-4444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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