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깨사]파격 뮤지컬 ‘치어걸을…’ 극본-제작-연출-주연 송용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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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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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건 싫다, 본능적으로”

《공연은 괴이하다. 해적 복장의 선장과 5명의 선원이 각자 보컬과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을 맡아 강렬한 밴드 음악을 100분 내내 선보인다. 뮤지컬 같기도, 콘서트 같기도 하다. 포악스러운 이들 해적의 목표는 돈도, 보물도 아니다. 원더랜드에 산다는 아름다운 치어걸들을 만나려는 ‘순진한 목표’를 위해 목숨을 내건다. 태풍으로 식량을 잃었다며 객석까지 내려와 돈과 먹을거리를 약탈하거나 관객을 포로로 잡아 무대에 세우며 분위기를 달군다. 입에 담기 힘든 거친 ‘욕 주문’을 속사포처럼 내뱉을 때는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질 정도. 머뭇거리던 관객들도 욕을 따라하며 공연장에는 “××새끼, ×새끼”가 울려 퍼진다.》

배우이자 연출가. 극본도 쓰고 음악감독도 한다. 10년 뒤에는 영화감독까지 꿈꾼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채 뮤지컬계의 판을 깨고 있는 사람, 바로 뮤지컬 배우 송용진씨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배우이자 연출가. 극본도 쓰고 음악감독도 한다. 10년 뒤에는 영화감독까지 꿈꾼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채 뮤지컬계의 판을 깨고 있는 사람, 바로 뮤지컬 배우 송용진씨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작은 클럽에서 시작한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는 태생처럼 젊은이들의 일탈, 열정, 위트가 넘친다. 제작 극본 음악감독 연출을 맡은 뮤지컬배우 송용진 씨(34)는 “그냥 한번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뜨거운 반응에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송 씨는 지난해 인디밴드 ‘딕펑스’와 공연을 2주 앞두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면서 의기투합했다. 급하게 대본을 쓰고 갖고 있던 옷을 재가공해 해적 의상을 만들었다. 송 씨의 주머니에서 나온 50만 원이 총제작비. 연습실 앞에서 2900원짜리 해장국을 먹으며 만든 ‘헝그리 공연’은 대박이 났다. 투자비의 10배 이상을 뽑았고, 올해 서울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두 차례 공연을 이어갔다.

“뮤지컬 마니아를 자칭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뮤지컬이야’라고 하시는데 그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고예요. 브로드웨이나 오프브로드웨이만 가도 정말 말도 안 되는 다양한 공연이 많거든요. 창작 뮤지컬이라면 최소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실험은 계속된다. 내년부터는 ‘치어걸을 찾아서’를 형식을 바꿔 장기공연 체제로 선보일 예정. 대학로에 ‘안착’했지만 안주는 싫다. 주말에 하는 클럽의 스탠딩 공연으로 바꿀 생각이다. 그리고 ‘음담패설’이 추가된 후끈한 성인용으로 바꾸는 것도 고민 중이다.

또 내년 여름엔 자신의 이름을 건 남성 모노 뮤지컬도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이벤트 해주기를 바라잖아요. 제가 뮤지션이 돼서 기념일을 앞두고 여자친구를 위해 노래를 작곡, 녹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죠.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영상 속에 나오는 여자친구와 대화하는 형식도 가능하게 해보려 합니다.”

송용진 씨가 기획 제작한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뮤지컬 같기도 하고 콘서트 같기도 한 이 공연에서 송 씨(오른쪽)는 선장 역을 맡았다.
송용진 씨가 기획 제작한 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뮤지컬 같기도 하고 콘서트 같기도 한 이 공연에서 송 씨(오른쪽)는 선장 역을 맡았다.
그는 작품 설명에 신이 나서 2012년까지 계획도 처음 털어놨다. 매우 상업적이며, 관객은 50명만 받고, 티켓 가격이 아주 비싼, 전혀 새로운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송 씨는 중학교 때부터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고,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나와 1999년 ‘록 햄릿’ 출연을 시작으로 뮤지컬 배우가 됐지만 제작이나 연출을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책을 읽으면 좋은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영화를 많이 봐요. 적어도 하루 한 편은 꼭 보죠. 개봉작도 보고 케이블 영화채널 더 보려고 부가 유료 서비스도 받아요.”

하루에 5시간 정도 선잠을 자면서 작업에 몰두한다는 이 괴짜를 공연계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뮤지컬 ‘헤드윅’ 등을 송 씨와 함께한 이진아 연출가는 “머리가 좋고 냉철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배우들은 자기가 다 조승우처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용진이는 자기가 못하는 것은 깨끗이 포기하고 자기의 강점을 살리려고 한다. 기존 틀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새 시장을 개척하는 스타일이다.”

뮤지컬 제작사 ‘쇼팩’의 송한샘 대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넘친다. 음악이 좋고 재미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다만 연출이든, 극작이든 기본적인 공부를 더 충실히 한다면 더 힘 있는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1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만든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감독과 새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성가족’에 이어 세 번째 영화다.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해 위장 결혼 등으로 엮이는 ‘퀴어 영화’. 역시 범상치 않다.

“‘헤드윅’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져 어떤 사람들은 ‘게이’가 아니냐고 묻기도 하는데 또 게이 역할을 맡게 됐어요. 그래도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들의 로맨틱 코미디니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는 올해만 ‘올슉업’ ‘치어걸을 찾아서’ ‘라디오스타’ 등에서 뮤지컬 배우로 나섰고, 7개 팀이 소속된 인디 레이블 ‘해적’의 사장이기도 하다. 배우로 버는 수입은 음반 제작과 신작 공연에 쏟아 붓는다. 10년 뒤 모습을 묻자 역시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40대에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아무래도 음악이나 뮤지컬 영화가 되겠지만 사실 B급 좀비 영화를 만들고 싶죠. 영화판에 들어가도 남이 안 하는 걸 해야죠.”

판을 깨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천성”이라고 했다. “뻔한 것은 싫어하고 색다른 것을 계속 찾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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