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포로 서예가, 400년 만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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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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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진주박물관 국제교류전

에도시대에 제작된 홍호연의 노년기 초상. 어릴 적 포로로 잡혔을 때 들고 있던 커다란 붓을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제공 국립진주박물관
에도시대에 제작된 홍호연의 노년기 초상. 어릴 적 포로로 잡혔을 때 들고 있던 커다란 붓을 어깨에 메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제공 국립진주박물관
‘인(忍). 참는 것은 마음의 보배요, 참지 못하는 것은 몸의 재앙이라.’ 1657년, 일본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선인 홍호연의 유서다. 홍호연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 2차 진주성전투 당시 산음(현 산청군)에서 나베시마 나오시게 군대에 납치됐다. 당시 큰 붓을 들고 있었다는 12세 소년은 일본에서 나베시마의 가신으로 있으며 고부(こぶ) 즉, 혹부리 모양의 독특한 글씨체로 명성을 얻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 40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립진주박물관은 30일부터 2011년 2월 6일까지 국제교류전 ‘임진왜란 조선인 포로의 기억’을 연다. 일본 사가 현의 중요문화재인 홍호연의 초상과 유서, 일본의 국가등록유형문화재인 다완(白磁碗), 포로쇄환유고문 등 일본의 여섯 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88점이 전시됐다.

전시는 3부로 나뉜다. 제1부 ‘조선인 포로, 시대적 배경과 실상’에서는 조선의 침략을 위해 일본의 히젠(肥前·현 사가 현) 나고야 성에 집결한 다이묘들의 배치도인 ‘히젠나고야성제후진적지도(肥前名護屋城諸侯陣跡之圖)’와 조선에서 부하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 등을 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서, 정유재란 때 일본 포로로 억류됐다 명나라에서 탈출한 노인(魯認·1566∼1622)이 기록한 금계일기(錦溪日記) 등을 선보인다. 이들을 통해 전쟁 직전 일본의 계획과 전쟁 전개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한-일 후손들의 만남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홍호연의 형 홍성해의 12대손 홍성대 씨(71·왼쪽)와 홍호연의 14대손 고우 기미히코(洪喜美彦·54) 씨가 29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연합뉴스
한-일 후손들의 만남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홍호연의 형 홍성해의 12대손 홍성대 씨(71·왼쪽)와 홍호연의 14대손 고우 기미히코(洪喜美彦·54) 씨가 29일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연합뉴스
‘문화의 전파와 교류’를 테마로 한 제2부에서는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받아들인 일본의 중세 문화 발전상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 아리타에 정착한 조선인 사기장들은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중 1594년경 일본으로 납치된 이삼평은 아리타를 일본 도자기의 산실로 만들었다. 이삼평의 가문 문서와 가마터에서 나온 자기들, 도공들이 만든 항아리 접시 등을 전시한다.

제3부 ‘예술로 승화한 포로의 꿈’은 일본에서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홍호연의 삶과 예술세계를 주제로 했다. 에도시대에 그린 홍호연의 초상과 글, 그가 쓰던 붓, 인장 등을 전시했다. 29일 개막식에는 국립진주박물관과 일본 사가현립나고야성박물관의 공동학술조사를 통해 연락이 닿은 일본에 사는 홍호연의 후손 11명과 한국에 남아있는 홍호연의 형과 아우의 후손 2명이 참석해 400여 년 만에 만남을 가졌다. 30일에는 일본 후손들이 경남 산청군 오부면 중촌리 남양 홍씨 집성촌을 방문할 예정이다. 055-742-5951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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