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수녀들? “죽음 미리 준비해야 임종 평안하죠”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모현 호스피스의 ‘죽이는’ 이데레사, 김안나, 김스텔라 수녀(왼쪽부터). 거의 매일 죽음과 마주치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도와 웃음이야말로 말기 환자들과 동행해야 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일지도 모른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모현 호스피스의 ‘죽이는’ 이데레사, 김안나, 김스텔라 수녀(왼쪽부터). 거의 매일 죽음과 마주치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도와 웃음이야말로 말기 환자들과 동행해야 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일지도 모른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연극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 모티브 된 ‘호스피스’ 세 수녀

“가을 되니 더 춥고 쓸쓸하죠.” “어디, 좋은 남자 없어요?” “연상보다는 연하가 더 낫겠죠.(웃음)”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모현(母峴) 호스피스’. 이곳을 운영하는 세 수녀 사이에서 난데없는 ‘남자 타령’이 벌어졌다. “소개해주면 머슴처럼 부리려고요”라고 묻자 세 수녀는 배시시 웃다 10대 소녀들처럼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데레사(49) 김스텔라(44) 김안나(44) 수녀. 이들은 소문난 대로 ‘죽이는 수녀들’이다. 모현 호스피스는 불치의 병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 호스피스로 활동해온 수녀들의 사연을 담은 책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를 2003년 출간했다. 이 책의 사연을 모티브로 한 같은 제목의 연극도 올해 무대에 오른다. 12월 16일부터 서울 동숭동 세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왜 이들은 스스로를 죽이는 수녀들이라고 할까.

“매일 죽음을 두고 벌어지는 환자들과 호스피스들의 이야기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까웠어요. 책의 내용이 죽음을 다룬 데다 우리는 멋있다, 미모 하나는 죽인다, 그래서 쿨(cool)한 수녀들이란 의미도 담았죠.(웃음)”(김안나 수녀)

마리아의작은자매회는 1877년 영국 여성 메리 포터가 설립한 수녀회로 국내에서는 약 40명의 수녀가 활동하고 있다. 1965년 강원 강릉시에 국내 최초의 호스피스 시설인 갈바리의원을 설립하는 등 호스피스 활동에 주력해왔다. 모현은 ‘어미 언덕’이란 뜻.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현장인 갈바리(골고다) 언덕에 서 있던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미 자신의 영정에 쓸 사진을 찍어두었다는 김스텔라 수녀는 “죽음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일부분이다. 호스피스는 환자들의 통증을 완화해주고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 동행자”라고 말했다. 모현호스피스에서는 매일 10∼15곳의 환자 가정을 방문하고, 때로 임종을 지켜보면서 24시간 활동하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와 가족들의 동행자로 살아온 이들은 “환자와 가족이 함께 죽음을 준비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가족의 상처가 너무 다르다”며 죽음을 위한 적절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년 전 여동생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낸 이데레사 수녀는 “동생은 치료가 불가능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생의 마지막 끈을 놓지 못했다”며 “아프다가 죽는 것 말고는 삶의 질이 나아질 길이 없었다. 동생이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고 말했다.

‘내일이면 너무 늦을 오늘 임종하는 이들을 위하여.’ 메리 포터의 말이자 이들 세 수녀의 기도이기도 하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