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증명된 ‘원작의 힘’-연극 ‘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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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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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 연출 ★★★★ 연기 ★★★★

수학자들의 얘기를 다룬 뮤지컬 ‘프루프’는 고차 방정식처럼 복잡하고 꼼꼼한 전개로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캐서린역의 이윤지(왼쪽)와 로버트 역의 남명렬. 사진 제공 악어컴퍼니
수학자들의 얘기를 다룬 뮤지컬 ‘프루프’는 고차 방정식처럼 복잡하고 꼼꼼한 전개로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캐서린역의 이윤지(왼쪽)와 로버트 역의 남명렬. 사진 제공 악어컴퍼니
“수학자는 23세가 정점이죠. 그때까지 학계를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발표하지 못하면 그 이후로는 내리막이에요. 뭐 50세가 되면 고등학생이나 가르쳐야죠.” 28세의 수학과 대학 교수인 할(김동현)은 뛰어난 업적을 기록하지 못해 불안하다. 그보다 세 살 아래인 캐서린은 자신감이 없다. 천재성은 있지만 별다른 정식 수학 교육을 받지 못해 수학계에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캐서린의 아버지인 수학자 로버트는 젊은 시절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노년에는 정신병을 앓는다.

지난달 12일 막을 올린 연극 ‘프루프’(연출 이유리)는 ‘무대가 좋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수학자들의 얘기를 그렸다. 2000년 미국 초연 이후 국내에선 세 번째 공연된다. 캐서린이 ‘위대한 수학 증명’을 홀로 만들어 냈지만 진위를 둘러싸고 가족, 연인과 갈등이 깊어지는 게 작품의 뼈대다. 수학자들은 ‘타원형 곡선’ ‘계수 형식’ 등 어려운 수학 용어에는 능숙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어설프다. 그들이 연극에서 천착한 ‘소수 증명’처럼 좀처럼 쉽게 나눠지지 않는 게 인생살이다.

극은 빠른 전개와 속도감 있는 대사, 숨겨진 반전을 통해 탄탄하게 펼쳐진다. 원작자인 미국 브로드웨이 극작가 데이비드 어번은 이 작품으로 2001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과 퓰리처상(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무대 전환도 없고, 별다른 음향 효과도 없는 이 연극은 아침과 오후,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제 변화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선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특히 탁구 경기를 보는 듯이 숨 가쁘게 오가는 배우들의 대사 자체가 톡톡 튀고 감칠맛이 난다.

캐서린 역에 더블 캐스팅된 강혜정과 이윤지는 나란히 첫 연극 도전에 나섰다. 강혜정은 표정 연기는 풍부했지만 감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발성이 부족했다. 이윤지는 안정적인 발성과 세심한 연기가 눈에 띄었지만 후반 집중력이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20대 초반 여성의 캐릭터, 할과의 자연스러운 애정 연기를 감안하면 이윤지가 캐서린의 모습에 가까웠다. 역시 더블 캐스팅인 로버트 역에는 남명렬이 정원중보다 한없이 다정스럽다가도 광기 어리게 변하는 수학자의 연기를 맛깔 나게 보여줬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i: 4만5000원. 12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이화동 대학로예술마당 3관.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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