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법치의 종착역은 평등한 정치 확립”… ‘한비자의 법치’ 10대 키워드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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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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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김예호 지음/392쪽·1만6000원/한길사

한비자는 조국 한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수차례 왕에게 글을 올려 간언했지만 기용되지 못했다. 그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동문수학했던 친구 이사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독살됐다. 삶은 불운했지만 진시황이 그가 남긴 저술을 읽고 “한비자와 함께 나라를 다스린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을 만큼 탁월한 인물이었다.

한비자의 단 하나뿐인 저서 ‘한비자’는 법가 이론을 종합한 문헌으로 통치이념을 ‘예치’에서 ‘법치’로 바꾸려는 움직임과 맞물린 역작이다. 춘추전국시대 예치의 정치적인 실효성이 빛을 잃으면서 예치와 덕치를 보조하는 정치수단에 불과했던 ‘법’이 통치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한비자에서는 이런 당시의 사회상을 사상적 논의의 근거로 삼아 법치사상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저자는 한비자를 10가지 키워드로 읽고 해석한다. 세계 지식 윤리 미학의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1∼4장은 법치를 하나의 이론으로 분석한 부분이다. 가령 1장 ‘도를 따르고 법을 완성한다’에서는 노자의 도론(道論)을 수용한 한비자 법치사상의 세계관을 분석한다. 도론은 자연원리의 보편성 공평무사 객관성 등을 주장하는데 한비자는 이 내용을 법치와 변법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로 활용한다. 도의 보편성을 통해 법의 보편성을 논증하면서 도가 이를 포괄하듯이 법 또한 인간사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포괄한다는 것이다.

문화 변법 군사의 세 가지 키워드를 다룬 5, 6, 7장은 법치 이론이 실현되지 못하는 사회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5장에서는 종교 경제 교육에 대한 한비자의 시각을 분석하는데 무신론적 사유의 특징을 보이는 종교관, 상벌을 통해 경제주체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 한비자는 부모의 사랑, 스승의 가르침 같은 미덕으로도 불량한 자식을 교화하지 못할 경우 공공의 법을 통해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엄한 교육론을 주장한다.

6장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가 흥미롭다. 한비자는 “시대가 다르면 일도 다르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정치 방법론이 강구되어야 하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기존의 정치사상에 대한 가치 평가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자가 풍부하고 사회구성원이 소수였던 과거의 경우 도덕정치를 손쉽게 실행할 수 있었지만 문명과 지혜가 발달하고 힘을 겨루는 시대에는 이에 적합한 통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정치권력의 현상적 절대성과 요지 부동성을 부정하는 한비자의 주장은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 술치(術治) 세치(勢治)로 파악한 8, 9, 10장은 실질적인 법치를 활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한비자를 읽은 것이다. 한비자는 법치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백성들의 귀천과 관계없이 평등하고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정치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이어 군주가 신하의 능력에 맞는 관직과 임무를 맡기는 데 필요한 술치, 군주가 자신의 지위에 부합하는 권력을 행사해 사람들을 다스리는 정치력을 가리키는 세(勢)를 설명함으로써 현실적인 정치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한비자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리는 법치주의 이념이 진정으로 실현된 이상세계는 아직도 달성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면서 한비자의 고민이 현재진행형임을 밝혔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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