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맛에 취하고… 멋에 취하고… 사람의 온기 느껴지는 이곳,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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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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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동성당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고산 윤선도의 6대손)과 그의 외종형인 권상연이 유교식 조상 제사 폐지를 주장하다 1791년 참수당한 순교의 자리다. 이들의 순교 100주기를 맞아 1891년 전동성당 본당의 터전이 마련됐다. 서울 명동성당 내부 공사를 마무리했던 V L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08년 성당 건축을 시작해 1931년 완공까지 23년이 걸렸다. 호남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이다. 한국영화 ‘약속’에서 박신양과 전도연이 둘만의 ‘눈물의 결혼식’을 올렸던 곳. 애틋해서 더욱 아름다웠던….
#2 한지


한지는 생활 과학이다. 닥나무와 쑥 등 자연의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살아있는 종이’로 통한다. 특히 한지 벽지는 불면증과 두통 해소, 아토피 피부염 개선, 항균과 항습의 기능성을 갖는다고 한다. 전주 한옥마을 공방들은 한지공예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천양제지㈜에서는 한지 벽지뿐 아니라 편지지와 봉투도 살 수 있다. 절로 가을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한 지인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황토벽에 한지 벽지를 일곱 겹 바른 친환경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그 집은 ‘학학’ 숨 쉴 것 같다. 부디 꿈을 이루시길.
#3 인생 부동산


전주 한옥마을이 특별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박제된 전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오랜 세월 살고 있는 인간적 동네란 점이다. 노신사 약사는 한가로이 신문을 읽고 있다. 이 마을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이름은 ‘인생부동산’. 한옥 시세는 대지 330m²(100평) 기준으로 2억5000만∼4억5000만 원이었다. 늘 북적대는 인근 베테랑 분식집 아저씨는 묵묵히 만두를 빚는다. 길을 지나가는 멋쟁이 숙녀에게 말을 걸어보니 중국 광저우에서 온 ‘스타일 위클리’의 기자란다. 그녀의 영어 이름은 리디아. 우리는 “전주, 참 예쁘다”고 맞장구를 쳤다.
#4 콩나물 국밥

전주엔 비빔밥이 있지만 더 유명한 콩나물국밥도 있다. 전주 예술가들의 아지트 카페인 ‘새벽강’ 또는 전주의 ‘가맥’(가게 맥주의 준말로 동네 슈퍼에서 맥주와 안주를 즐기는 독특한 음주 문화)을 대표하는 전일슈퍼에서 술을 마셨다면 다음 날 아침 콩나물국밥이 제격이다. 단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전주에선 전주의 콩나물국밥 먹는 방법을 따를 것. 사발에 따로 담겨 나오는 계란 두 알에 국밥을 떠 담고 김 가루를 뿌려 먹는다. 남부시장 내 천일옥의 콩나물국밥은 그 속에 들어간 쫀득한 오징어 맛이 일품이다.
#5 한옥 카페


전주 한옥마을의 밤은 낮보다 더 운치가 있다. 외국인 남녀가 창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끌려 들어가 본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발견)란 이름의 북 카페. 젊은 부부가 주인인 이 카페의 레몬차도 세렌디피티였다! 레몬 한 개를 즉석에서 듬뿍 짜 차를 끓여내 왔으니. ‘이름 없는 찻집’과 맞은편 ‘아카 갤러리’는 갤러리 카페, ‘산책’은 한옥 와인 바다. ‘외할머니 솜씨’란 한식 디저트 카페에선 흑임자 깨죽과 생강 대추차를 판다. 상호의 ‘씨’ 글자에서 ‘ㅅ’ 두 개를 세로로 배열한 간판이 흥미롭다.
#6 조롱박

‘조롱박 이야기’란 가게에서 말린 조롱박을 6개나 샀다. 몇 년 전 해외 출장을 함께 갔던 다른 신문사 후배 기자가 이 모습을 지켜보더니 말했다. “예전엔 ‘돌체 앤드 가바나’(섹시 콘셉트의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를 끔찍이 좋아하더니, 그사이 취향이 완전히 ‘트래디셔널’로 바뀌었네요.” 나는 말했다. “요즘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트렌디하다니까.” 동그란 조롱박은 매달고, 반으로 가른 기다란 조롱박엔 가을의 낙엽을 담으리라. 한옥마을에서 주워온 노란색 은행잎 세 장이 벌써 적당히 말랐다.

글·사진 전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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