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서울/한 도서관 한 책 읽기]연극으로 들려주는 소설 “생생하고 가슴에 확 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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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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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프로젝트 이리’ 찾아가는 문학 공연

주부 관객들이 27일 서울 강서구 푸른들청소년도서관에서 열린 연극 ‘문학을 들려주다’를 관람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은희경 작가의 소설 ‘빈처’를 무대화했다(왼쪽). 시각장애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같은 공연(오른쪽).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주부 관객들이 27일 서울 강서구 푸른들청소년도서관에서 열린 연극 ‘문학을 들려주다’를 관람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은희경 작가의 소설 ‘빈처’를 무대화했다(왼쪽). 시각장애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같은 공연(오른쪽).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27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강서구립 푸른들청소년 도서관. 도서관 찾을 짬을 내기 어려운 주부 30여 명이 평일인데도 3층 세미나실을 채웠다. 이들은 이날 책이 아닌 연극을 보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규모가 작은 이 도서관에 극단이 찾아와 공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공연은 극단 ‘프로젝트 이리’가 진행하는 ‘문학을 들려주다’ 프로그램. 극단은 은희경 작가의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에 수록된 단편 ‘빈처’를 연극으로 꾸몄다. 결혼 후 일상에 묻혀 사는 부부의 권태를 통해 결혼과 사랑의 의리를 다룬 작품이다. 이야기는 우연히 아내의 일기장을 본 남편이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이 행사는 서울문화재단과 동아일보가 기획한 ‘책읽는 서울’ 가운데 독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도서관 한 책 읽기’의 일환. ‘책읽는 서울’은 서울문화재단이 2004년부터 진행한 독서문화 캠페인으로, 독서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고 문화와 결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공연은 무대와 객석의 구별조차 없는 교실 한 칸만 한 작은 공간에서 열렸다. 배우들의 숨소리조차 관객에게 들릴 만한 공간이었다. 연극이 어색한 주부들은 처음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자배우가 관객 옆에 다가가 “아가씨 몇 살이지”라고 묻자 웃음이 터지고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여배우가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으로 남는다”고 말하자 곳곳에서 공감을 표시하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자는 장면에서는 “자나 봐” “코도 고네”라고 속삭이면서 저마다 연극과 하나가 되는 모습이었다. “남루한 가정생활의 일상이 그래도 가꾸어 가야 할 소중한 것”이라는 남자배우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50분간 이어진 공연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졌다.

공연을 본 박원희 씨는 “결혼한 지 20년인데 잠시 지나온 가정생활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바빠서 문학작품을 읽기 힘든데, 이 공연을 계기로 은희경 씨의 원작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을 ‘시각화’한 공연은 그렇게 끝났다.

이 극단은 12일 오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 점자도서관 강당에서도 공연했다. 이날 공연은 문학을 ‘청각화’한 자리였다. 관객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공연 시작 전 강당 출입구에는 ‘빈처’의 점자책이 놓였다. 시각장애인 20여 명은 도우미들과 함께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귀를 쫑긋 세웠다. 강당은 방음 시설이 잘돼 있어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렸다.

극단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공연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아내와 남편이 대학 캠퍼스에서 연애하는 장면에서는 명랑한 음악이 흘렀고, 아내와 싸운 남편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에서는 배우가 발을 큰 소리로 굴러 관객이 소리만으로도 상황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일이 안 돼. 남은 인생을 이렇게 허비해 버릴 거야.”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아내가 남편에게 목소릴 높이는 대목에서 여성 관객들은 “안 되지”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아픈 아이를 달래다 잠든 아내를 보며 남편이 안쓰러움에 흐느끼는 장면에서는 눈가를 훔치는 여성 관객도 있었다.

곳곳에서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에 “그렇지” “그럼 안 돼” 등 추임새가 이어졌다. 이날 참여한 장애인들은 도서관 회원들로 평소 오디오북 등을 통해 문학을 많이 접했지만 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공연은 문학 작품에 대한 상상력을 더했다고 말했다.

고성연 씨는 “배우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문학을 접하니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다. 도우미와 같이 와야 하는 불편 등 제약이 많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공연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 김태문 씨는 “장애인들이 추임새를 넣어주는 등 반응이 즉각적이라 공연할 맛이 난다”며 “시각장애인들이 문학의 향기를 느끼는 데 연극이 효과적인 수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강순자 점자도서관 팀장은 “장애인 중에는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 분이 많은데, 연극은 장애인들이 문학을 즐기는 데 더 좋은 것 같다. 장애인들이 ‘성우들의 육성을 들으니 행복감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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