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사태 22∼24일 수습 과정 뒷얘기… 공개사과 놓고 이틀간 긴장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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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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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직영사찰 수용” 매듭

주지 명진 스님
주지 명진 스님
정치적 외압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 강남구 봉은사 사태는 24일 (사진)의 직영사찰 지정 수용과 사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은 봉은사 사태의 우여곡절을 짚어봤다.

○ “공개 사과하라” vs “그건 못하겠다”

명진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22일 화쟁위원회 스님들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참석한 모임에서 수행자답지 않은 격한 언행으로 갈등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징계와 관련해 “꽃게든 털게든 받겠다”며 수용 의사를 내비쳤다.

표면적으로는 전격적인 사과였지만 22일 모임에서는 양측의 이견이 드러나 급박한 기류가 흘렀다는 후문이다. 이 모임은 봉은사 사태를 매듭짓기 위한 자리였지만 한 참석자가 명진 스님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면서 서먹서먹한 상태로 끝났기 때문이다. 다음 날인 23일 봉은사 측이 기자들의 휴대전화에 ‘봉은사 일요법회 명진스님 법문-직영 지정 관련 중대입장 발표’라는 메시지를 보내자 총무원과 화쟁위는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당시 명진 스님이 입장을 바꿔 화쟁위 중재안을 거부하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후 여러 스님이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된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도 “막판에 고비가 있었지만 명진 스님이 다시 결심해줬다”고 말했다.

봉은사 대변인 격인 황찬익 씨는 “주지 스님이 불편한 개인적인 심경과는 별도로 23일 내내 고민하면서 봉은사와 종단을 위해 결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봉은사를 둘러싼 ‘종단 정치’

봉은사 사태의 이면을 이해하려면 조계종의 오랜 관행인 ‘종단 정치’의 현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계종의 기구는 총무원(행정), 종회(입법), 호계원(사법) 등으로 나뉘며 종회는 정부의 국회에 해당한다. 출신 문중의 인연과 활동 방향이 비슷한 종회의원들은 정당과 비슷한 ‘종책 모임’을 만들어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현재 종책 모임은 화엄 무량 무차 보림회 등 4개로 이들은 지난해 자승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추대했다.

봉은사 사태를 촉발한 직영사찰 지정안은 종책 모임에서 의견을 교환한 뒤 3월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종회를 통과했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종단 내부의 정서이지만 명진 스님은 정치적 외압설을 제기했다.

화쟁위원으로 명진 스님과 가까운 법등 스님은 “봉은사 사태는 정치적으로 번질 사안이 아니었다”며 “30년 가깝게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던 도반인 자승 스님에 대한 명진 스님의 서운함이 일을 크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쟁위가 13일 직영사찰의 주지 임기제 실시와 징계에서의 선처 등 봉은사의 요구가 반영된 중재안을 발표하고 이를 총무원이 사실상 수용함에 따라 명진 스님이 계속 총무원과 대립할 명분이 사라졌다.

종단 내에서는 명진 스님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정치적 외압설을 터뜨리면서 스스로 고립됐다는 분석이 많다. 종단의 한 관계자는 “화엄 무차 보림회는 물론이고 명진 스님과 가까운 무량회에서도 측근을 빼면 ‘종단과 함께 죽자는 것이냐’며 등을 돌렸다”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었지만 종단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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