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제 목사“오지 선교 23년… 다 놓고 다시 오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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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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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성공적 사역 접고 멕시코로 떠나는 이기제 목사
독충-마약상 살해 위협 딛고 세운 교회-각급 학교 소유권 모두 포기
“남은건 이곳 주민에 대한 그리움”

《“처음 볼리비아 올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죠. 내가 더 필요한 곳에 가는 것이 선교사의 일 아닌가요? 지금까지 선교사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욕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포기의 선교’죠.” 23년간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기제 목사(57)의 말이다.》

“갖고 온 것도 없으니 그냥 떠나면 됩니다.” 23년간 남미 볼리비아에서 고산병과 독충 등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선교사로 활동한 이기제 목사(왼쪽)와 부인 박미숙 선교사. 이 부부는 볼리비아를 떠나 멕시코에서 제2의 선교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기제 목사
“갖고 온 것도 없으니 그냥 떠나면 됩니다.” 23년간 남미 볼리비아에서 고산병과 독충 등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선교사로 활동한 이기제 목사(왼쪽)와 부인 박미숙 선교사. 이 부부는 볼리비아를 떠나 멕시코에서 제2의 선교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이기제 목사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이다. 1987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볼리비아에 도착한 뒤 그는 고산병과 독충에 시달리고, 마약상들의 총부리에 협박을 당하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볼리비아의 빈민촌은 물론 카누를 타고 정글로 들어가 안데스 산맥의 고산족을 찾아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렇게 해서 생긴 교회가 스물한 곳이다. 의료 선교회와 농원을 세웠고, 현지인들이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 하는 유아원을 비롯해 초중고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최근 볼리비아에서의 선교 경험을 담은 책 ‘볼리비아에서 온 편지’(홍성사)를 출간한 그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갖고 온 것도 없으니 그냥 떠나면 된다”고 했다.

내년 6월 멕시코로 떠날 준비를 하는 그는 요즘 후임 선교사를 위한 당부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구두와 와이셔츠, 양복 등을 현지인들에게 모두 내줄 것, 돌을 맞더라도 빈민촌에 들어가 길거리 노방전도부터 시작할 것….’

이 목사가 부인 박미숙 선교사(55)와 살고 있는 곳은 코차밤바. 수도 라파스에서 남쪽으로 500여 km에 있고 차로 4시간쯤 가면 코카인 재배로 유명한 차파레 지역이 나온다. 현지인이 살던 집을 그대로 쓰고 있다. 비가 오면 지금도 양동이를 10여 개 놓은 채 비를 받아야 하고, 민추카라는 독충과 뱀 등이 제집처럼 드나든다.

그는 이미 5년 전 소속 교단에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치적으로 변동이 심한 볼리비아의 내정 상황과 후임 선교사들의 준비를 위해 시간이 늦춰졌다.

이기제 목사가 볼리비아에서 어린이들에게 전도 하는 모습(위)과 자신이 직접 세운 학교에서 우등 생들을 축하해 주는 모습.
이기제 목사가 볼리비아에서 어린이들에게 전도 하는 모습(위)과 자신이 직접 세운 학교에서 우등 생들을 축하해 주는 모습.
일찌감치 학교, 교회 등과 관련한 모든 재산과 권리는 선교회와 현지인들 앞으로 등록했고, 문제가 생기면 국가에 귀속하도록 했다. 개인 소유로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미련이 있다면 이곳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여기 사람들, 우리랑 비슷하게 정이 많아요. 이번에 극적으로 구조된 칠레 광원들 중 볼리비아 사람이 있었죠. 경기가 어려워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 남미 여러 나라에 가서 어려운 일을 하다 죽기도 많이 죽습니다.”

그는 돌이켜보면 책 한 권에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사연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정글에서 길을 잃고 탈진했다 코카 잎으로 어려움을 넘기고 ‘아마존의 늑대’로 불리는 식인어 피라냐를 매운탕으로 끓여 먹기도 했다.

“처음에 해발 2600m가 넘는 지역에서 고산병을 앓아 가족 4명이 한꺼번에 모두 죽을 뻔했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지만 볼리비아에서의 23년을 무척 즐겁게 보낸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은혜와 지혜를 주셨어요. 20년이 넘으니 철도 들고요. 조금씩 감사하다는 맘이 듭니다.”

그가 이곳에서 배운 말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자신의 이름이다.

“이기제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기제리죠. ‘기자리 풍쿠타’라고 하면 현지어인 게추아어로 ‘문이 열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선교사에게 이만큼 좋은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묘한 섭리 같아요.”

인천 영종도가 고향인 그는 이곳에서의 삶을 즐겼지만 자녀와 부모에게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이곳에 있을 때 모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죠. 임종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몇 해를 넘긴 뒤 묘소에 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때마다 더 많은 일을 주시고 바쁘게 만들었죠. 어쩔 수 없이 불효자죠.”

부부는 가능한 한 한국인이 없는 멕시코에서 인생 후반의 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아마 박 선교사도 100% 저랑 뜻이 같을걸요. 아니 99%인가(웃음).”(이 목사)

“미련 없어요. 목사님이 아름다운 결정을 했잖아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예요.”(박 선교사)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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