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보수와 진보, 도덕의 양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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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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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정치를 말하다/조지 레이코프 지음/624쪽·2만2000원/김영사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며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은 왜 영아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정부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부정적일까. 교육과 복지를 강조하며 어린이의 권익을 보호하자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어떻게 어린이 살해범과 같은 범죄자를 옹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을까.

인지과학의 세계적 석학이자 정치사상가인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정치 사회 등 민감한 사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담론을 들여다봤다. 저자는 두 이념이 전혀 다른 도덕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 핵심은 가정 모델에 있다고 지적한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서로 다른 가족상을 그리고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국가를 가정과 동일시하면서 도덕적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엄한 아버지 모델’에서 나온 ‘세상은 위험한 곳이며 인생이란 어려운 것’이라는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었고 악을 이기려면 자제와 극기를 통해 강해져야 한다. 악에 굴복하거나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것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진보주의는 ‘자애로운 부모 모델’을 기반으로 삼았다.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곳이 세상이라고 봤다.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약자는 나태하고 방종한 이들이 아니라 역사적 혹은 사회적 이유나 건강 등의 문제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는 이들이므로 보호할 대상이다.

상이한 도덕적 가치를 갖고 있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각자의 도덕성에 속하는 카테고리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실수로 임신을 한 10대 소녀의 낙태 문제의 경우 보수주의자는 태아를 아기로 간주해 낙태를 반대하며 임신은 미성년자가 저지른 비도덕적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벌을 받거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진보 측에서는 난처한 처지에 놓인 소녀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동정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또 인생의 설계자로서 원치 않은 아기로 인해 소녀의 꿈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걸 납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외에도 책은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세금, 규제와 환경, 범죄와 사형제도, 기독교 모델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담론이 각자의 도덕적 성격에 따라 어떻게 펼쳐지는지 소개한다.

이슈에 따라 각 이념의 핵심 가치를 설명하고 있지만 진보의 입장에 서 있는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보수주의자들을 더 잘 알게 된 만큼 두려워졌다고 고백한다. 진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자신의 도덕을 이해하고 이를 대중정치와 연결하는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들은 도덕성이라는 프레임과 자유 해방 통합 법의 지배라는 멋진 개념을 선점했다고 봤다.

저자는 지금까지는 보수주의적 정치가 선도해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고 배척하고 탓하는 엄한 아버지 도덕으로는 사회를 더는 건강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상벌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로 볼 게 아니라 내면의 정신과 상대성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미국이 두 도덕 세계 사이에 놓여 있다고 보는 저자는 자애로운 부모의 도덕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끝맺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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