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말한다 “나에게 연희문학창작촌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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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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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다” “텃밭이다” “말의 꿈자리다”

연희문학창작촌의 ‘포토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 (위)왼쪽부터 김애란 박범신 (아래)왼쪽부터 백영옥 박찬세 씨. 사진 제공 연희문학창작촌
연희문학창작촌의 ‘포토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 (위)왼쪽부터 김애란 박범신 (아래)왼쪽부터 백영옥 박찬세 씨. 사진 제공 연희문학창작촌
‘연희는 □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연희문학창작촌. 지난해 11월 개관한 이래 66명의 문인이 이곳에서 작품을 썼다. 대부분의 문학창작집필실이 교통이 불편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해서 작가들을 세상으로부터 ‘유배’시키는 게 특징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꾸려진 연희문학창작촌은 작가들이 자연스레 일상과 몸을 섞게 했다. 문을 나서면 밥벌이하는 삶의 현장, 들어서면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데 매력을 느낀 작가들이 잇달아 입주신청을 했다.

연희문학창작촌이 최근 ‘입주 작가 포토 아카이브’ 만들기에 한창이다. 창작촌에서 지낸 작가들의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려는 작업이다. 원로부터 신인까지 당대의 문인들을 품은 공간으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얼굴들을 자료화한다는 포부다. 그저 사진 촬영만 하는 게 아니다. 언어를 만지는 작가들인 만큼 언어 숙제도 던졌다. ‘연희는 □다!’의 빈칸을 채우라는 것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어룽거리는 어조의 시인 김사인 씨(54)는 ‘연희는 좋∼다’고 적었다. ‘□’는 당연히 명사를 쓰리라는 고정관념에서 훌쩍 벗어난 시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시인 김선재 씨(39)도 ‘연희는 샘(셈)이다’라며 재미난 말 쓰임새를 자랑했다. ‘문학의 샘’인 창작촌에서 남은 거주날짜를 ‘셈하면서’ 안타까워했다는 의미다.

소설가 김애란 씨(30)에게 ‘연희는 말의 꿈자리다’. 김 씨는 이곳에서 계간 ‘창작과비평’에 연재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집필하는 등 ‘말의 꿈자리’를 펼쳐놓았다. 도심 속 창작공간이라는 연희문학창작촌의 특징은 방을 무대로 삼았던 김 씨의 작품 세계가 도시로 나왔다는 최근의 변화와도 이어진다. 공간이 어떠하냐에 따라 글쓰기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작가들에게 공간의 의미가 각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희는 텃밭이다’라고 적은 시인 박찬세 씨(31). 실제로 창작촌에는 상추, 고추, 토마토 등 온갖 채소를 키우는 텃밭이 있다. 창작촌이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까닭에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문인들에게 텃밭의 채소는 유용한 반찬거리다. 텃밭과 가장 가까운 집필실을 사용하는 박 씨는 텃밭의 채소사랑이 지극한 문인으로 꼽힌다.

소설가 박범신 씨(64)는 ‘연희는 은교다’라고 적었다. ‘은교’는 작가가 최근에 낸 장편소설 제목이다. 작가가 사석에서 아끼는 사람들을 ‘은교’라고 부르는 것을 떠올리면 창작촌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애착 모두를 느낄 수 있다.

아침에 창작촌의 새소리에 잠이 깬다고 ‘연희는 새소리다’라고 한 소설가 백영옥 씨(36), 모두가 글에 몰입하는 침묵의 공간이지만 어느 곳보다 글쓰기의 자유로움이 느껴져 조용한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것 같다며 ‘연희는 물고기다’라고 적은 소설가 김유진 씨(29), 통통 튀는 젊은 시인답게 ‘연희는 연인의 환희다’라는 유쾌한 말놀이를 적은 오은 씨(28), 글쓰기와 부딪쳐 ‘맞짱떴다’면서 ‘연희는 진짜다’라고 쓴 극작가 김민정 씨(38)…. 작가들이 글쓰기와 마주하면서 어떤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다. 문학이 그 내밀한 공간에서 단련되어 나온 산물임을 ‘연희는…’은 보여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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