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몰고 온 시대변화’ 학계 담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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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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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실시간 소통 넓은 네트워크 형성‘정연’-혈연-학연 넘는 ‘정보 인연’ 고리로

“스마트폰은 ‘디지털 스키너 박스’다.”

지난해 미국에서 스마트폰 확산에 관한 담론이 한창일 때 데이비드 메이어 미시간대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심리학자 B F 스키너(1904∼1990)의 실험에 빗댄 것이다. 스키너는 ‘스키너 박스’로 이름 지은 상자에 생쥐를 넣은 뒤 페달을 밟으면 먹이가 나오도록 했다. 메이어 교수는 “생쥐가 먹이를 얻으려고 반복해서 페달을 밟은 것처럼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정보’라는 자극을 얻기 위해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사용한다”고 규정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또 다른 특징으로 메이어 교수는 신속성을 들었다. 그는 “e메일을 받는다면 몇 시간 안에는 답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e메일 보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 습득의 실시간성, 빨라진 커뮤니케이션 속도 등을 강조한 그의 발언은 스마트폰 대중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으로 꼽혀 널리 인용됐다.

뒤늦게 스마트폰 이용자가 300만 명을 넘어서며 스마트폰 대중화를 맞은 한국에서도 스마트폰 담론이 본격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패션’의 단계를 넘어 ‘생활’ 또는 ‘필수품’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스마트폰이 몰고 오는 ‘호모 모빌리스’ 시대의 변화상을 진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우선 ‘관계’와 ‘소통’의 확장에 주목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자끼리 트위터 등을 통해 편하고 빠르고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고영삼 박사(사회학)는 ‘광통(廣通)’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휴대전화나 웹을 통한 커뮤니케이션보다 소통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른바 ‘정연(情緣)’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고 박사는 “농경사회의 혈연, 산업사회의 학연에 이어 지금은 정연(정보 인연)이 중요한 시대인데 정보를 주고받는 데 스마트폰이 주요한 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속도’도 주목해야 할 키워드로 꼽힌다. 현 교수는 “정보의 질과 양도 중요하지만 누가 빨리 정보를 얻느냐의 ‘속도’가 점점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이를 가속화해 ‘속도전의 일상화’를 낳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의 확산이 가져올 변화를 ‘아이포니제이션(Iphonization)’이라는 개념으로 예측했다. 스마트폰의 대표주자인 ‘아이폰’을 활용해 만든 신조어다. 앞으로 나올 새로운 기기의 형태, 콘텐츠의 생산 및 유통 형태 등이 모두 스마트폰 형식에 맞춰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스마트폰의 활성화로 컴퓨팅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PC가 담당하던 영역의 상당 부분이 스마트폰으로 옮아가는 ‘기능적 엑소더스’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교수는 이어 “사회적 맥락에서 본다면 스마트폰의 확산은 행위를 시공간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면서 ‘탈구(dislocation)’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이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그 자체로 기존의 패러다임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보았다.

한국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올해 안에 전체 휴대전화 사용자의 10%인 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파른 상승세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휴대전화 사용자 10명 중 9명은 여전히 스마트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스마트폰 가입자의 대다수가 수도권에 집중됐다는 통계에서 볼 수 있듯 지역이나 계층 간 격차가 나타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PC나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진 것처럼 스마트폰의 사용이 일종의 ‘의무적’ 규범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도입 맞먹는 혁명적 변화… 사용자 지역-계층 간 차이는 문제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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