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원고갈 막는 길은 사용자의 자율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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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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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비극을 넘어/엘리너 오스트롬 지음·윤홍근, 안도경 옮김/488쪽·1만9800원/랜덤하우스코리아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것에는 최소한의 배려만이 주어질 뿐이다. 모두 공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제한된 목초지에서 목동 두 명이 가축을 키우고 있다. 목초지에 가축을 많이 내보낼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목초지의 넓이와 풀의 양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목동 한 명이 과잉방목으로 이득을 얻으면 다른 한 명은 손해를 봐야 한다. 결국 두 사람은 더 많은 가축을 내보내기 위해,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다 목초지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1968년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공유의 비극’에 등장하는 사례다. 합리적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공익을 저해하고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 역설은 오랫동안 경제학의 통념이자 난제로 꼽혔다.

이 논문이 지적한 ‘공유의 비극’은 자원고갈과 환경파괴가 심화되면서 더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은 두 가지였다. 공유자원을 국유화해 국가가 관리하거나, 사유화 즉 개인에게 소유권을 주는 것이다.

무분별한 벌채로 열대우림이 사라지는 현상을 허파가 손상된 모습에 비유한 세계자연보호기금(WWF) 포스터. 저자는 산림과 지하수 등 공유 자원의 파괴나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자원 사용자가 직접 다양한 제도를 정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세계자연보호기금
무분별한 벌채로 열대우림이 사라지는 현상을 허파가 손상된 모습에 비유한 세계자연보호기금(WWF) 포스터. 저자는 산림과 지하수 등 공유 자원의 파괴나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자원 사용자가 직접 다양한 제도를 정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 세계자연보호기금
2009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는 수상 당시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히기도 한 이 책에서 위 두 가지 방법 모두를 비판한다. 국유화의 경우 국가가 늘 합리적 효과적으로 상황을 통제할지 보장할 수 없다. 태국, 네팔, 인도 등에서 국유화 이후 비리와 감시인력 부족으로 오히려 산림 파괴가 늘어난 것이 한 가지 예다. 사유화 역시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산림이나 어장, 지하수 등은 사유화 자체가 어렵다.

저자는 사유화나 국유화처럼 외부에서 강제된 해결책 대신 공유자원 사용자들이 공동체 차원에서 직접 나서 공유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공유자원을 직접 사용하는 이들이야말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주인공들이다. 공유자원을 어떻게 활용 보존하느냐 여부에 자신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공유자원을 오랫동안 활용해온 축적된 지식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스위스 북부 발레스 주의 퇴르벨 마을은 15세기 무렵부터 마을 공동 목초지를 운영해왔다. 1517년 작성된 조례에는 “여름철 초지에 내보낼 수 있는 소의 수는 겨울철에 자신이 사육할 수 있는 소의 수만큼만 허용된다”고 적혀 있다. 마을 목초지에 내보낼 가축 수를 제한하고 이를 공동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규약은 마을 전원이 참석한 투표에서 결정된다. 이 규약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으며 환경파괴나 자원고갈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일본 산악지대 농촌 마을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집합 행동을 통해 공유지를 보존, 활용해 마을 전체의 공익을 증진시킨 사례를 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지하수 분지 관리 제도는 이 같은 지속 가능한 공유자원 관리 제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기고 정착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지하수 분지는 주변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 밑에 고인 일종의 지하 저수지로, 캘리포니아 주 같은 반건조성 지역에서는 중요한 수자원이 된다. 이 중 레이먼드 지하수 분지 위에는 패서디나 시, 앨햄브라 시 등 10여 개 도시가 있다. 1920년대까지 이 지하수 분지가 고갈되지 않도록 댐을 건설하고 수량을 보충하는 일은 패서디나 시가 전담했다. 패서디나 시는 1930년대 들어 모든 지하수 생산자들이 공동으로 지하수 사용량을 감축하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생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은 공유자원 사용 환경에 변화를 예고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지하수 분지의 물 양수량은 안전 양수량을 매년 상당 부분 초과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법원이 전체 양수량을 감축할 것이 분명했다. 생산자들은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맞는 대신 스스로 협상에 나서 합의안을 작성하기로 했다. 6개월에 걸쳐 작성된 합의안은 양수량 감축에 합의하고 감축분을 각자 비례해 분담하도록 했다. 미래에 안전 양수량이 변하는 것까지 대비했다. 법원은 이 합의안에 기초해 판결을 내렸다.

이후 45년이 지났지만 이 합의가 위반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각 지역의 수자원 전문 기구는 각 생산자의 양수량을 세세히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해 배포한다. 생산자들은 모두 자신이 합의를 위반할 경우 그 사실이 다른 생산자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쉽게 합의를 위반할 수 없다. 위반한다 하더라도 물을 퍼 올릴 권리를 가진 다른 생산자가 법적 조치를 통해 즉각 제재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공유자원 관리 제도도 종종 실패의 위기를 맞는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공유자원 관리 제도가 성공할 수 있는 디자인 원칙 8가지를 도출해낸다. 공유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공유자원 자체의 경계가 명확해야 하며, 참여자들이 직접 규칙수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감시활동과 위반에 대한 제재가 뒤따라야 하는데 특히 반복해서 위반하거나 그 위반행위가 무거울수록 제재도 강력해져야 한다. 이 같은 제도를 디자인하는 사용자들의 자율적 권리가 정부 당국에 간섭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 같은 저자의 논의는 ‘공유의 비극’과 같은 모델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좀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개인들의 역량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실제 상황 속 개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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